<의약품의 부족>
내가 어렸을 때에는 학질이 꽤 많았던 모양이었다. 1905년, 보통학교를 나와 신문을 볼 때쯤 됐을 때 신문에는 금계 랍 광고가 제일 많았던 것이 기억난다.
의사가 되고 나서 조사해 보았더니 우리 신문에 약 광고가 처음으로 난 것은 1890년, 내가 두 살 때의 일로 독립신문에『학질에 백발백중하는 금계 랍을 판다』는 광고가 나 있었다.
나는 2년 동안 안동 도립병원에 있다가 평안북도의 초산 병원으로 옮겨갔는데 여기서 경험한 것은 의약품의 부족이었다.
환자 가운데는 성병도 상당히 많았으나 지금과 같은 페니실린 등 항생제가 없어 모든 병을 쉽게 치료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경성에는 매독에 잘 듣는다는 소문난 606호가 이미 오래 전부터 수입돼 있었다.
내가 오오사까로 유학 가던 1912년 매일신보에는 박용남씨가 606호를 놔준다는 광고를 내고있었다.
박용남씨는 1909년에 이미 신예신보를 발간하고 있었다. 그는 동-서 의를 겸한 선구자로 오히려 서의에 가 까왔으며 동서의약 방이란 가정구급용 책을 편찬하기도 했다.
박용남씨는 606호를 파는 것보다 주사를 놓아주는 사람으로 이름난 것이 특이했다.
역시 그 무렵엔 의료기관이 보급되지 않아 갖가지 매 약이 성행했지만 약도 금계 랍이나 606호와 같이 치료약은 모두 수입품이었고 우리 나라에서 만든 것은 팔보단이니, 자선 환이니, 청심환인지 하는 구급약 또는 보건약품뿐이었다.
이름에 일본인 약 행상이 몰려 경향 각지에 돌아다녔다. 특히 약 행상으로 돈번 일본 사람이 많았다.
대게 1905년에서 10년께로 짐작되지만 아라이라는 일본인 행상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특히 호남지방을 돌아 다녔다. 이자는 인 단을 갖고 왔는데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하면서 6, 7월에 농촌을 돌며 가을에 쌀로 받기로 하고 의상을 놓고 다녔던 것이다.
이자는 술책에 속아 외상이라면 소도 자아 먹는다는 배짱으로 마구 농사꾼들이 인 단을 팔아주었던 것이다.
1911년께 인데 우리 나라 처음의 법인체 제약회사로 조선 매 약 주식회사가 생겼고 여기에 만병통치란 영신 환 이 크게 선전되었다.
이보다 앞서 동화약방에서 활명수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는 민병호란 사람의 개인 집이었다.
여기에 비해 조선 매 약은 이석모 란 사람이 그때 이름 있던 평화 당 약방의 최응선, 제 생 당의 이경봉과 같이 자본금 50만원을 내어 꾸민 회사였다. 사장인 이석모는 일본 등을 다녀온 선구자였다.
이 회사가 곧이어 내 놓은 약이 팔보단·자양 환·태양조경 환·회생 수·소생 단·하리 산·급체 쾌 통산 등인데 대개 알약과 가루약이었다.
지금도 어렸을 적 기억이 나지만 바로 이 조선 매 약이 생기기 직전 경인철도의 객차 안에서 유창한 목소리로 청 심보 명단을 선전하는 이가 있었다.
지금의 은 단과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이 분이 제 생 당 약국을 세웠다가 뒤에는 조선 매 약에 참가한 이경봉이란 것을 뒤에 알았다.
이 이경봉의 제 생 당 약국은 인천에 있던 세원 양 행과 계약하여 외국의 약품을 많이 수입 판매했다. 아마도 약품 무역의 효시가 아니었던가 한다.
1905년에서 1915년까지의 연대에는 지금의 서울 을지로 2가인 구리 개에 약방이 밀집해 있었는데 제 생·평화 당이 외에 자혜 대 약방·대일 약방·홍 제 당·천은 당 등이었다.
모두가 제약과 판매를 겸했는데 여기서 가장 오래된 제약 업체는 회화약방의 활명수였다.
활명수는 1897년에 나오기 시작하여 1916년에 있던 조선대박람회 때부터 전국에 선전이 되었다. 1910년께 부터 조선 총독부의 특허권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이 활명수 본 포인 동화 약품의 2대 사장이던 민강씨는 1920년께 독립운동을 하다 상해로 피신했으나 잡혀 옥사한 애국자이기도 하다.
그러자 정착 양 약방이 생긴 것은 1922년으로 삼우 당 약방이다. 이때쯤에는 유명한 일본의 약이 들어와 판을 치고 있었으며 눈약으로는 대학안약, 관절염에는 류마치 아레치자스 등 매독에는 먹는 약 요도 가리 환이 있었다.
치료약은 대부분 일본제약업자가 우리 나라에 대리점을 두고 공급했다. 외과용 약품은 지금의 약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때는 수술을 했을 때 지금처럼 곪지 않게 항생제를 쓰고 즉시 꿰매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수술한 자리에 머큐럼(아까징끼)에 흠뻑 적신 솜을 틀어막아 생살이 돋아나 아물 때까지 날마다 이것을 갈아주었는데 그때마다 환자의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1920년에는 우리 나라에 호열자(콜레라)가 돌아 전국에서 약 2만 명이 사망했다. 이때는 한의를 찾는 환자가 많아 방역을 크게 망쳤던 일이 있다.
갖가지 소독약품도 시원치 않았다. 호열자 환자를 맞는 한의는 정말 난처한 입장에 서 있었으나 그래도 한약을 꼬박꼬박 지어 주었다.
이것을 안 일본 경찰은 강권을 발동하여 호열자 환자를 고발 않고 약을 지어준 한의들을 모조리 검거하여 벌을 주었던 것이다.의약품의>
(34)<제자는 필자>|<제3화>인술개화(6)|정구충
중앙일보 지면보기 서비스는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최근 1개월 내
지면만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지면만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지면보기 서비스는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앱에서만 제공되는 편의 기능
- · 로그인하면 AD Free! 뉴스를 광고없이 더 깔끔하게
- · 속보는 물론 구독한 최신 콘텐트까지! 알림을 더 빠르게
- · 나에게 딱 맞는 앱 경험! 맞춤 환경으로 더 편리하게
개성과 품격 모두 잡은 2024년 하이패션 트렌드
Posted by 더 하이엔드
집앞까지 찾아오는 특별한 공병 수거 방법
Posted by 아모레퍼시픽
“차례상에 햄버거 올려도 됩니다”
ILab Original
로맨틱한 연말을 위한 최고의 선물
Posted by 더 하이엔드
데이터로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들
Posted by 더존비즈온
희귀질환 아이들에게 꿈이 생겼습니다
ILab Original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메모
0/500
메모를 삭제 하시겠습니까?
중앙일보 회원만열람 가능한 기사입니다.
중앙일보 회원이 되어주세요!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편의 기능이 궁금하신가요?
중앙일보 회원이 되시면 다양한 편의 기능과 함께 중앙일보만의 콘텐트를 즐길수 있어요!
- 취향저격한 구독 상품을 한눈에 모아보고 알림받는 내구독
- 북마크한 콘텐트와 내활동을 아카이빙하는 보관함
-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스크랩하고 기록하는 하이라이트/메모
- 중앙일보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스페셜 콘텐트
알림 레터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 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중앙일보는 뉴스레터, 기타 구독 서비스 제공 목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이용 합니다. ‘구독 서비스’ 신청자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해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동의를 거부 하였을 경우 이메일을 수신할 수 없습니다. 구독 신청을 통해 발송된 메일의 수신 거부 기능을 통해 개인정보 수집 · 이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