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으로 술 권하는 건 인권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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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나라의 성인남자 중 60%가 과음을 하고, 간질환 사망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술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도 연간 34조원에 달하죠. 이것이 '술 권하는 사회'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범국민절주운동본부 실천운동본부장 김춘진(金椿鎭.50)씨. 서울 영등포에서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절주(節酒)운동의 전도사다. 金씨는 "과음의 폐해가 사회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는데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金씨는 20여년 전 의원을 개업할 당시 술을 한방울도 못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떨쳐 버리기 위해 한두 잔 마시던 술이 '말술'로 바뀌었고, 앉은 자리에서 폭탄주 17잔을 해치우기도 했다.

1996년에는 전북 부안 고향 마을을 찾았다가 동네 어른들이 건네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먹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그러던 그가 술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 것은 97년 대한보건협회 알코올연구회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절주 운동은 시민운동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팔을 걷어붙였고, 지난해에 절주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金씨는 "우리 사회에선 술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취하도록 마시는 게 문제"라며 "술을 못하는 사람에게 강압적으로 술잔을 돌리는 것은 인권침해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운동의 목표는 술을 아예 안마시는 금주(禁酒)가 아니라 적당히 즐기면서 마시는 절주라고 강조했다.

"술 '주(酒)'자는 삼 수(水)변에 닭 유(酉)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닭이 물을 마실 때처럼 조금씩 마신다는 뜻이죠. 대화에 있어 윤활유이자 삶의 활력소인 술이 인간관계를 망치고 인생을 파탄내는 주범이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미국 국립알코올중독연구소에 따르면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적당 주량은 석잔이며, 다섯잔이 넘으면 과음으로 간주한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절주운동본부는 절주헌장을 제정하고 청소년 등에게 절주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다음달부터는 매달 첫째 월요일을 '절주의 날'로 정해 절주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金씨는 "술에 부과되는 주세(酒稅)가 알코올중독 치료.예방 등에 대폭 사용돼야 한다"며 "주류에 건강부담금을 부과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30도 이상의 독주에 건강부담금을 부과하면 서민에게는 부담이 적으면서도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도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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