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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앙<성대총장>|해고와 감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연말이 되면 으레 있는 일이거니 하는 생각은 하지만 금년에는 일반기업체에서 대량 해고, 감봉 소동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어쩐지 쌀쌀한 공기가 감돈다. 연말의 자금사정을 완화해달라는 업주들의 절규가 점점 고조해감에 따라 당국의 긴축정책도 그 힘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의 양상을 앞에 놓고 업자·정부 그리고 제3자가 각기 다른 입장에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으니 뒤숭숭하기만 하다.
부실기업을 이끌고 온 기업주들에 대해 공격을 집중하는 분 도가 있고 정부의 긴축일회도의 정책을 무모하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야 물론 기업자의 책임도 있고 정부의 책임도 있으며 모 세계경제의 큰 물결 탓도 있을 줄 안다.
그 어느 책임이 가장 큰 것인가 함을 따지기 전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발등의 불을 어떻게 끄는가하는 점이다.
우리 나라 기업 중 부실한 것이 있다는 것은 오늘 비로소 생긴 것은 아니다. 또 처음부터 부실기업인줄 알면서 착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이때까지는 이럭저럭 꾸려오다가 근래에 발생한 여러 가지 여건의 변동 때문에 부실의 노정이 빨랐을 뿐이다.
사실이 그렇다해도 긴축일변도의 정책으로서 한 계단 위에 있는 부실기업을 몰락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기업의 부실은 기업주의 방만한 경영, 기업설립시의 판단착오, 국제경쟁력의 변화, 혹은 국내의 가격정책 또는 금융재정정책의 무리 등에 기인하고 있음이 실정이라면 종합적인 처방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며 한 부분에만 그 책임을 몰아친다고 해서 끝날 일은 아니다.
긴축정책에 의한 통화가치의 안정도 좋다. 그러나 우리 나라 기업이 대체로 보아 온실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사실도 감안하여 신축성 있는 재정금융정책으로 점차적으로 기도한바 목적을 달성하도록 함이 어떨까 한다. 이러한 점에서 금융재정정책에 있어서 단적인 제한을 완화하고 질적인 조절을 강화하면서 고비를 넘겨 가야 할 줄 안다.
어떤 학자가 말하듯이 완만한「인플레」는 오히려 후진국 경제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너무 지나친 긴축일변도는 기업의 갈 길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목숨을 절단해 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이 긴축정책만으로써 기업의 도산을 촉진시키기에는 너무나 세계경제의 파도가 거 치른 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가가 정신을 바짝 차려 체질개선에 앞장서야 함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이란 쓰러지기는 쉽고 재건하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경험적인 사실을 명심해야 할 줄 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서 공부한 이론이 반드시 우리 나라와 똑같은 경제바탕에서 도출된 것이 아닌 이상에는 한국경제의 주어진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함이 어떨까 한다. 또 우리 나라 경제는 깊이가 얕고 그 기반이 단단하지 못해 많은 기업이 도산되지 않더라도 전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빠르고 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은 대량해고가 사실이라면, 그리고 이것이 일종의「케인즈」적 순환적 실업이라고 한다면 그에 필요한 조처도 빨리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제나 급격한「커브」는 서서히 가야한다고 경고문이 불어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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