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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통상임금이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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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Q 5일 대법원에서는 통상임금 관련 공개 변론이 열렸습니다. 공개 변론이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판결을 앞두고 법원이 공개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양쪽의 입장을 듣는 자리입니다. 도대체 통상임금이 뭐기에 대법원이 공개 변론까지 하게 된 것일까요. 또 통상임금 범위가 달라지면 기업과 근로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되나요.

A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통상’이란 말은 ‘일상적으로’라는 뜻입니다. 법에는 좀 더 자세한 정의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는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정한 바)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일급·주급·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통상임금은 기업이 근로자에게 일상적으로 주는 임금을 말하는 셈입니다.

 뜻풀이는 이렇게 간단하지만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를 ‘통상’으로 볼지를 두고 회사와 노동조합의 생각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상여금이란 매월 주는 월급 외에 회사가 근로자에게 특별히 주는 돈입니다. 흔히 ‘보너스(Bonu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특별히 주는 돈이니까 일상적으로 주는 임금인 통상임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정기’라는 말이 붙으면서 문제가 꼬였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선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체계부터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기업은 기본적으로 주는 임금(기본급)을 덜 올려왔습니다. 대신 추가 근로를 하거나 특별한 업무를 할 때 주는 수당이나 상여금을 더 주는 식으로 근로자의 소득을 보전해줬습니다. 기본급은 한번 올리면 조정이 어렵지만, 수당이나 상여금은 임금 협상을 통해 상대적으로 조정이 쉽기 때문이죠. 노동조합도 기업이 부담스러워하는 기본급 대신 수당이나 상여금 인상을 통해 근로자의 실제 소득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정부도 한때 기업이 기본급을 과도하게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누적되면서 원래는 특별히 주는 돈인 상여금이 몇 달에 한 번 또는 분기마다 주는 돈이 됐습니다. 그래서 정기 상여금이란 게 생긴 것입니다.

노조는 “몰랐던 임금 받겠다” 줄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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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계는 이런 정기 상여금은 당연히 통상임금이라고 주장합니다. 올 3월 법원이 대구의 한 버스회사 노조가 낸 소송에서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이란 판결을 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 판결 소식이 알려지면서 현재 160여 건의 통상임금 소송이 법원에 제출된 상태입니다. 5일 공개 변론에서 노동계는 “지금까지는 몰라서 못 받았지만, 이제는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이란 걸 알게 됐으니 밀린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기업 측 생각은 다릅니다. 통상임금은 매월 주는 돈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주는 돈까지 통상임금으로 보면 통상임금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임금체계가 비슷한 이웃 일본에서도 월 단위를 넘어서 주는 임금은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는다는 외국 사례도 제시합니다.

 지급 주기뿐 아니라 ‘일률성’도 통상임금 소송의 쟁점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 수당은 가족 수에 따라 달라지는 수당입니다. 재계는 이런 돈을 근로자 사정에 따라 달라져 일률적으로 주는 돈이 아니고, 근로의 양이나 질과도 무관하기 때문에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노동계는 일부 판례를 제시하며 임금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정기적인 수당은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판례 얘기가 나왔으니 잠깐 짚고 가자면 법원의 판례도 아직은 어느 한쪽이라고 단정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과거에는 기업 주장에 더 가까웠으나 최근에 와선 노동계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대법원이 공개 변론까지 하면서 교통정리에 나선 것도 이런 변화로 인해 혼란이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요. 통상임금이 회사가 근로자에게 주는 각종 임금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추가 근로를 할 경우 지급하는 특근 수당은 통상임금의 몇% 식으로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통상임금이 오르면 각종 수당도 오르는 것이죠.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비 산정에도 영향을 줍니다. 퇴직금도 통상임금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통상임금 기준이 확대되면 임금체계와 임금 수준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 셈입니다.

기업은 “인건비 급증, 어마어마한 부담”

 기업은 이렇게 되면 어마어마한 부담이 생긴다고 호소합니다. 만약 근로자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기면 회사는 지난 3년치도 소급해서 줘야 합니다. 이에 따라 규모가 작은 기업은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추가 비용으로 인해 망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합니다. 기업의 모임인 대한상공회의소의 박용만 회장은 “통상임금 문제는 공멸의 문제이자 기업 생존의 문제”라고 걱정합니다.

 기업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에 대해선 분석이 제각각입니다.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 첫해에만 38조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고 걱정합니다. 정부 산하 연구소인 한국노동연구원은 21조9000억원으로 추정합니다. 노동단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4조~6조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합니다. 금액의 차이는 크지만 어쨌든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김동욱 경총 본부장은 “통상임금이 확대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규직 근로자가 주로 혜택을 보게 돼 비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면서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기업의 고용이 줄어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체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앞으로 통상임금이 높아져 수당 지급 부담이 커지면 기업이 추가 근무를 마음대로 시키기가 어려워질 것이란 얘깁니다. 따라서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줄어들 것이란 주장입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193시간(2010년 기준)으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49시간보다 많습니다.

대법원 교통정리 나서 연내 최종 판결

 통상임금이 경제 전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이 다릅니다. 재계는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다른 나라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원가가 올라서 같은 제품을 비싸게 팔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임금 부담으로 고용이 줄어들면서 일자리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합니다. 그러나 노동계는 근로자의 소득이 늘면서 소비를 많이 하게 되면 기업에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양측의 입장은 팽팽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노사는 모두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연말까지는 판결을 내린다는 방침입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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