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케」중의 일화>
그 당시 소위 인기「스타」였던 나를 연모하는 청년들은 그후로도 수없이 많았다.
정기탁 씨와 내가 주연했던『봉황의 면류관』을 연출한 이경손 감독도 남몰래 나를 짝사랑한사람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심청전』『장한몽』등을 비롯해서 초창기의 감독으로 이름을 떨친 이경손 씨는 아주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나를 좋아하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고 남들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었다.
그 당시 퍽 불우한 환경에 놓여 있었던 그는 청진 동에 있던 영 성 여관에서 할일 없이 날을 보냈는데 그때 쓴 일기장을 그의 친구였던 안종화 씨가 뜯어 가지고 와 나중에야 알려진 일이었다.
나운규씨처럼 작달막한 키의 이경손 씨는 노인 역으로도 분장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가끔 우스운 소리도 곧잘 했지만 평소엔 언제나 말이 없는 침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또 후일『백의인』이란 장편소설을 쓴 일도 있었다. 이 소설은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김을한 씨가 그의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쓰라고 권한 것이었다.
이 소설은 김을한 씨가 신문사 측에 우겨 1백50회 정도 연재되었다.
『백의인』의 연재를 마친 다음 이경손 씨는 정기탁「프로덕션」의『춘 희』를 감독했고 후에는 이경손「프로덕션」를 차려『숙영낭자전』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이조시대 이야기에 거울이 달린 요즘의 장롱이 나오는 등「미스」로 해서 실패작을 면치 못했다.
그후 이경손 씨는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상해로 가서는 그곳 영화계의 전창근 씨와 같이『양자강』을 만들기도 했다. 그후 그는 또 태국으로 가서 그곳 여성과 결혼도하고 사업으로 돈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고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초창기 영화계에는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우스운 일들이 많았다. 하기야 처음 활동사진이 들어왔을 때는 관객이 없어 오히려 돈을 주고 구경시켜주던 때도 있었다지만-.
당시만 해도 이동촬영 기술이 재대로 없어 화면은 고정되었고「클로즈업」도 어려웠다. 요즘같이「레일」을 깔고 그 위에「카메라」를 올려놓고 굴리면 간단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자동차에「카메라」를 싣고 전진후퇴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카메라」밑에 담요를 깔고 그 담요를 잡아당기는 수법을 썼다. 이때「카메라 맨」을 조수가 잡아당기는 담요를 밟지 않으려고 엉거주춤하게「카메라」를 붙잡고 따라다녔는데 그 자세는 정말 가관이었다.
그 당시 영화「로케」장의「에피소드」들도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내가『데뷔』하기도 전인 윤백남 감독의『운영 전』촬영 때의 일이다.
밀양「로케」에서 주인공인 안평대군이 느릿느릿 젊 잖 게 걸어오는 장면이었다. 감독의 구령이 덜어지자「카메라」가 자르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감독의 입에서『컷』이라는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카메라맨」은「미야시다」라는 일본인이었는데 그는 감독에게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는 줄 알고「필름」한 통을 그대로 다 돌려버리기도 했다·
나운규 감독의『들쥐』촬영 때는 희한한 일이 있었다.『아리랑』의 성공으로 의욕에 차 있던 나 선생은『들쥐』의 첫 화면을 쥐들로 채우려고 했다. 쥐 5백 마리와 고양이 1마리를 한곳에 모아놓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혈투를 화면에 담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쥐 1마리에 10전씩 주고 사겠다고 널러 공고를 했다. 그 당시만 해도 10전이면 상당한 돈이었으니 쥐들은 하루 80여 마리 씩 몰려들었다. 나 선생은 목욕탕에다 쌀을 충분히 넣고 이 쥐들을 가두어 두었다. 그러나 다음날아침 뚜껑을 열어보니 처참한 광경이 벌어져있었다. 쥐들이 동족끼리 싸우느라 몇 마리 남질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쥐들의 출연(?)계획은 취소됐지만 하여간 나 선생은 기발한「아이디어」를 많이 내었고 영화의 화면에 신경을 많이 썼었다.
단성사 선전부장과 촬영 부 감독으로 있던 이구영씨가 만든『낙화유수』에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 영화는 당시 화류계여성들이 눈물 깨나 흘렸던 제목그대로의 비극이었고 또「낙화유수」라는 주제가가 대유행했었다.
여기에는『농중조』로 영화에「데뷔」했던 복혜숙 씨가 주연했었다. 이 복혜숙 씨가 화가에게 실연 당한 끝에 투신자살하는 장면을 찍을 때의 일이다.
「로케」장소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마포 앞의 밤 섬이었는데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이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야했다. 그러나「카메라」를 들이대고 기다려도 복혜숙 씨는 좀 체로 빠져주질 않았다. 푸른 물길이 깊어 보여 머뭇거린 것이었다.
얕은데 뭘 그 러 느냐는「스태프」들의 독촉에 할 수 없이 복혜숙 씨는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얕다던 강물은 의외로 깊어 물살에 휘감겨 떠내려갔고 물도 실컷 먹고 말았다. 곧「스 탭」들에 의해 구출되긴 했지만 복혜숙 씨는 하마터면 영화의 제목그대로「낙화유수」가 될 뻔했던 것이다. <계속>계속>
(20)<제자는 필자>|<제2화>무성영화시대(8)|신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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