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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전전복귀=일 극우단체의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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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급속한 경제발전에 이어 일본이 군국주의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끈덕진 반론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로 취급되어왔다. 일본의 군국주의화 경향을 가장 신랄하게 비난하고 나온 것은 바로 중공이었다. 지난4월에 열렸던 금년도 일 중공무역협상에서 중공측은 일본 대표 후루이(고정)씨를 설득,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경향을 경고하는 공동성명을 발표케 했다.
사또(좌등) 정부는 이것을 중공의 『내정간섭』행위라고 비난했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이때 일본과 동남아를 시찰하고 귀국한 미 하원외교위원회의 의원 2명이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들이 제출한 보고서가 『일본의 새로운 군국주의』와 『아시아에서 중요한 군사적 역할을 담당하려는 속셈』에 대해 경고했던 것이다.
외국인들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일본정부는 대략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펴고 있다. 즉 중공이 2백50만의 병력을 보유한데 비해 일본은 불과 20만내 외의 자위대를 갖고 있을 뿐이며 헌법에 의해 핵 병기보유와 해외파병이 금지되어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보다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했다. 문제는 현재의 상황보다도 현 정책의 방향에 있다는 해석이다.
이들은 자위대를 유지하고 있는 자체가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 무력사용을 영원히 포기』하고 이를 위해 『육·해·공군 및 기타 여하한 병력』도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헌법 제9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핵 병기에 관해서도 자민당 의원의 대부분이 사실을 상기시킨다. 게다가 자민당 지도자들이 『여론의 일치』라는 말로 핵 병기포기를 설명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만약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이 엇갈리고 분열된다면 『핵 병기의 모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군국주의화 경향을 우려하는데는 일본정부의 이같은 『모호한 태도』 외에 극우파 전체주의 노력의 대두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극우세력의 움직임가운데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고다마·요시오(아옥예사부)가 이끄는 청년 이데올로기 연구회와 준 종교단체인 『성장하는 집안』이란 묘한 이름의 집단과 또 인기작가 미시다·유끼오씨가 조직한 다데노까이 등이 있다.
2차 대전 중 중국에서 고급정보기관의장으로 일하던 아옥은 연구회라는 간판 밑에서 현재 사병까지 훈련시키고 있다. 이들은 인적이 드문 중부일본에서 자기들 제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는데 아옥의 설명에 의하면 『빨갱이가 일본을 삼킬 적에 가차없이 쳐부수기 위한 행동대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동경의 최고급 빌딩을 사무실로 쓰면서 태평양전쟁 때의 영웅들을 찬미하는 내용의 『민족의 노래』를 보급한다.
아옥처럼 무슨 연구회니 클럽이니 하는 간판을 떼고 군국주의 시대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그룹은 수 없이 많다. 동경 변두리에서 날마다 전투복차림으로 트럭을 끌고 다니며 열변을 토하는 애국당 당수 아까오·빙(적미민)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아옥의 청년 이데올로기 연구회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잇는 지도적 세력은 『성장하는 집안』이다. 20년대에 발족한 이 준 종교단체는 현재 1백50만명의 지지세력을 갖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란 『천황의 지배권을 회복』시키고 『구 헌법(2차대전전)으로 복귀』하자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내 세우는 단체에 입헌양정회가 있다. 『민주주의란 도대체 이본의 역사 및 전통과는 궁합이 안 맞으므로 전전의 정치체제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정강이다.
이러한 주의·주장의 혼란상태는 『어떤 정치적 견해라도 자유로이 발표할 수 있는』 일본정계의 특색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 무수한 정견의 지지자들을 좌·우익으로 대별할 때 좌익층이 적어도 숫적으로는 훨씬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향력이 반드시 숫자에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예컨대 일본정부는 적군파가 비밀군사훈련을 준비했을 때 이들을 살인예비혐의로 모조리 잡아들였었다. 그러나 우익의 리더인 작가 미시마·유끼오(삼도유기부)의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연1개월씩 자위대에 편입시켜 군사훈련을 받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당국과 우익세력간의 묘한 관계는 그밖에도 많이 있다. 아옥이 자민당 창립자의 하나라는 사실과 이들이 소위 『민족의 노래』를 발표하는 자리에 현 사또 수상의 형이자 전 수상인 기시·노부스께(안신개)가 출석했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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