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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원 야스쿠니 집단 참배 … 명단도 못 구한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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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원엽
정치국제부문 기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23일 야스쿠니(靖國)신사에 직접 혹은 대리 참배한 일본 국회의원 30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일본 전체 국회의원(722명)의 42.4%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후루야 게이지 납치문제 담당상,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 등 주요 각료들이 명단에 포함됐다.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 258명 중 107명이 참배했다는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 희생자뿐 아니라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까지 합사돼 있어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을 드러내는 대명사로 인식돼왔다. 그런 만큼 야스쿠니를 참배한 일본 의원들이 누군지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지난달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는 춘계예대제(4월 21~23일)와 종전기념일(8월15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한 일본 의원 명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명단 공개 시 한·일 외교관계 악화가 우려되고 부정확한 명단이 발표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부처 내 상의가 필요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외교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명단 확보가 제대로 안 됐다는 점이 사실 크게 작용했다. 그동안 정부는 관행적으로 신사 참배 주요 각료 명단까지만 확인하고 전체 의원 명단은 확보하지 않았다. 야스쿠니 사무국에서 명단을 제공하지 않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여러 경로로 취합한 부정확한 명단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외교부는 “구할 수 없다”던 명단을 인 의원이 23일 입수해 공개했다. 소스는 다름 아닌 일본 내 우익단체인 ‘영령에 보답하는 모임’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거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해당 자료를 확인했지만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 참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정부기관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양국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외교적 파장을 신경 쓰는 사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공개된 명단이 있다면 “부정확할 수 있다”며 무시할 일이 아니라 정확한 명단을 만들기 위해 참고하고 확인하는 노력을 하는 게 상식적이고 성실한 태도일 것이다. 특히 그것이 국민의 관심사라면 말이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외교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역사 문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말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외교에서 중요한 건 화려한 수사보다 명단·수치·통계와 같은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논거’다. 단호한 대처는 말이 아니라 단단한 논거에서 나온다.

정원엽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