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진 속…혹사의 「인간 밀림」|분신 소동 일으킨 청계천 6가 피복 제조 상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13일 하오 서울 시내 중구 청계천 6가에 있는 평화시장, 동대문시장, 통일상가 등의 종업원 5백여명이 근로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데모」를 벌이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자 재단사 친목회 대표 전태일씨(22·서울 성북구 쌍문동 208)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자살했다. 이 사건은 낮은 임금에 혹사당하고 직업병에 몸까지 망치고 있는데도 근로자의 보호를 외면하고 있는 당국과 기업주에 경종을 올린 것이다. 이곳에 일하고 있는 2만7천여명의 종업원들은 작업 환경이 나빠 대부분 안질환, 신경성 위장병 등에 걸려 있을 뿐 아니라 낮은 임금에 혹사당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7일 이 같은 사실을 들어 노동청에 진정했지만 노동청은 업주 측에 조명·분진에 대해서만 개수 지시를 내렸을 뿐 한달이 넘도록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각종 어린이옷·어른 기성복·잠바·작업복 등을 대량으로 만들고 있는 이곳은 10∼5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9백여개의 군소 제품 업소가 밀집돼 있다.
여기서 일하는 종업원은 재단사 2천5백여명·재봉사 1만2천여명·소년 견습공 1만3천여명 등 2만7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곳 제품부는 단층을 합판으로 막아 상·하로 나누어 천장 높이는 겨우 1·5m 정도로 키 큰 종업원은 허리를 펼 수 없는 형편이다.
대부분이 미싱을 쓰기 때문에 대낮에도 백열등이나 형광등을 켜놓고 일하고 있어 이들은 밖에 나가면 밝은 햇빛 아래서는 눈을 바로 뜰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평에 평균 4명이 자봉틀 등을 두고 일하고 있는 작업장 한 구석에는 자취하는 종업원들의 취사 도구 등이 그대로 놓여있고 평화시장 같은데는 환기 시설하나 없다.
더우면 문을 열어두는게 고작 통풍 시설이고 추우면 문을 닫아 제품 과정에서 특히 많이 생기는 분진이 방밖으로 새어 나 갈 수 없는 형편이다. 지난달 종업원들이 노동청에 진정하기 위해 1백26명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바에 의하면 96명이 폐결핵 등 기관지질환자이고 1백26명 전원이 안질환에 걸려 있으며 밝은 곳에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종업원들은 하루 평균 14∼15시간씩 혹사당하면서도 시간의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1만3천여명이나 되는 13∼17세의 소녀 조수나 견습공들은 월급이 겨우 3천원.
작업장의 유해 물질 허용 한도까지 규정하면서 근로자를 보호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는 당국이 서울 중심가에 있는 이 같은 유해 작업장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구호뿐인 근로 기준 감독 행정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일 뿐 아니라 종업원의 건강을 생각 않는 기업주에도 경종이 되고 있다.<현봉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