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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셰일가스 붐에 亞 석탄철도 생기는 까닭은 …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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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팔렸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던 1위 기업, 핀란드 수출과 법인세 세수의 4분의 1을 홀로 차지했던 바로 그 기업이다. 그런 노키아가 최근 MS에 54억4000만 유로(7조8650억원)를 받고 휴대전화 기기와 서비스, 특허 부문을 넘기기로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노키아의 영광은 채 20년이 못 갔다.

격동의 시대다. 예전엔 기업이 한번 정상을 차지하면 적어도 30년은 그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 수명이 단축됐고, 변동성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미국을 대표하는 S&P500 기업만 보더라도 주당 순이익이 전례 없는 진폭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인도 같은 거대한 시장이 새로 생겨나면서 변화의 속도와 영향력은 가속화된 데다 경쟁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매년 이머징(신흥) 국가에서는 수천 개의 기업이 새로 생겨나고 성장한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을 결정 짓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 같은 대형 글로벌 ‘사건’이고, 또 하나는 스마트폰 등장ㆍ확산 같은 대형 글로벌 ‘트렌드’다.

수많은 우연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사건’은 본질적으로 예측이 어렵다. 그래서 여기에 대비하려면 몇 가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그에 따라 각각의 대처법을 만들어 놓는 것이 효과적이다. 잘 알려진 석유메이저 셸의 ‘시나리오 플래닝’이 바로 그런 방식이다.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큰 흐름, 메가 트렌드에 대한 대응법은 이와 다르다. 관련된 데이터를 면밀히 지켜보며 변화를 유발하는 계기(트리거)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준비가 잘된 기업이라면 시장을 얻겠지만 무방비 상태의 기업들은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다.

메가 트렌드에 대처하는 다섯 가지 원칙

경영자가 메가 트렌드를 지켜볼 때 아래의 다섯 가지 사항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무엇이 트렌드를 폭발시킨 트리거인지 알아야 한다. 자고 일어나보니 다음날 세상이 변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트렌드는 중장기적인 시간에 걸쳐 나타난다. 변화의 움직임은 스멀스멀 시작되기 마련이다. 큰 방향은 분명 이쪽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직 뭔가 부족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떤 트리거를 계기로 거대한 변화의 물결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가 목격하고 있는 메가 트렌드의 하나인 미국의 셰일혁명 역시 그랬다. 셰일가스가 발견된 것은 무려 30년 전인 1980년대였다. 하지만 셰일가스를 생산하려면 지하 수천m의 암반을 수평으로 굴착한 뒤 고압의 물과 모래로 암반을 파쇄해야 한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개발이 지연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오른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원유 대비 셰일가스의 가격 경쟁력이 생긴 것이다.

트리거를 알았다면 그 다음은 내 입장을 정할 차례다. 방아쇠가 더 빨리 당겨지도록 한몫하는 주체가 될 것인가? 기다리다가 방아쇠가 당겨지는 걸 확인한 뒤에 잽싸게 따라붙는 ‘패스트 팔로어’가 될 것인가? 입장을 정하려면 기업이 지금 갖고 있는 역량과 전략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기술적인 장애가 메가 트렌드의 물결을 막을 수도 있다. 기술에 대한 선투자에 나서거나 잠재성 있는 기술을 인수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가끔은 상충하는 트렌드가 경쟁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최근 스마트폰 운영체제로 안드로이드와 iSO(애플 모바일 운영체제)가 대치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경우 흔히 둘 중 하나를 택하거나 두 가지를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다른 차원의 전략도 가능하다. 이를 테면 안드로이드와 iSO 기반 스마트폰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디스플레이나 반도체의 수요가 늘어나는 데서 기회를 찾는 방법이다.

메가 트렌드에서 한발 비켜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동참하지 않는 것도 훌륭한 전략의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라도 메가 트렌드가 기업의 기존 사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치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특히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냉정한 판단과 대응이 필요하다. 시장-제품-경쟁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떤 메가 트렌드가 발생하면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각종 2차, 3차 영향이 생기게 마련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지분을 투자한 캐나다 셰일가스 개발 현장. [사진 한국가스공사]

SK가스, 셰일가스 활용해 새 사업 진출

다시 셰일로 돌아가 보자. 셰일가스 양산이 시작됨에 따라 북미 지역의 천연가스 공급이 늘어나고 가스 수입국이던 미국은 수출국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했다. 값이 싸지니 가스 차량이 늘고 가스를 사용하는 발전소도 늘어난다. 여기까지는 1차 파장이다. 이어 가스가 석탄 수요를 점점 대체하면서 글로벌 석탄 가격이 떨어진다. 그러면 가스 가격이 여전히 높은 아시아와 같은 지역에선 가격이 떨어진 석탄으로 발전소를 돌리려는 새 수요가 생긴다. 석탄 수출입에 필요한 터미널이나 철도 등의 인프라 수요도 늘게 된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원인과 현상의 연쇄 효과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큰 그림이 보인다. 기업은 거기서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에너지 유통기업에서 제조기업으로의 변신을 추구하고 있는 SK가스를 보자. 메가 트렌드를 면밀히 분석하고 거기서 생기는 기회를 기존 사업과의 연관성 속에서 판단해 적절한 시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세웠다. SK가스는 최근 몇 년간 셰일이라는 메가 트렌드의 파급 효과를 검토해 왔다. 그 결과 두 가지 행동에 나섰다.

우선 수입처를 다변화했다. 지난 6월 SK가스는 북미산 셰일가스를 기반으로 한 LPG를 2015, 2016년 2년 간에 걸쳐 총 36만t 구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는 전체 가스 수입량의 약 5%에 해당한다. 이전까지는 모두 중동 등지에서 수입했다.

석유화학사업에도 뛰어들기로 했다. SK가스는 올 초 울산에 프로필렌 생산시설을 지어 석유화학 제조업에 진출했다. 이를 위해 미국 석유화학공정 기술특허권 업체인 럼머스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원료로 한 프로필렌 제조사업 공정기술 계약을 맺고 공장을 설계했다. 생산품목은 석유화학 제품의 중간재로 쓰이는 프로필렌.

석유화학 플랜트의 원료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와 천연가스에서 추출되는 에탄으로 나뉜다. 둘 중 하나를 분해(크랙)해 모든 종류의 석유화학제품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셰일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원유에 기반한 나프타 분해설비(크래커)의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나프타 공급이 줄어들면 그 주요 부산물인 프로필렌 공급도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에 쓰이는 프로필렌의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나프타 대신 LPG로부터 프로필렌을 뽑아내 공급해도 판로를 찾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된다. 새로운 석유화학사업의 수요 기반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이 회사는 LPG 가격이 떨어지는 것만 걱정하기보다 직접 관련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채굴보다 장비ㆍ파이프ㆍ인프라 시장이 기회

한국은 에너지 대량 수입국이다. 새로운 에너지원 셰일을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서 언급한 메가 트렌드에 대처할 때의 다섯 가지 원칙 아래 기업 차원에서 적극적인 전략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SK가스가 택한 전략만이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각 기업이 처한 사정에 따라 다양한 전략이 나올 수 있다. 셰일가스 채굴에 직접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가스 개발에 필요한 장비를 개발·생산하는 분야에도 눈을 돌려봄 직하다. 셰일가스 붐 덕분에 장비와 파이프 시장이 커지고 있다. 가스전 주변에는 도로와 같은 인프라도 깔아야 한다. 한국 기업의 기회는 이런 분야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더 크다.

김용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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