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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 뻥튀기 기계 가져갔더니 … 동네 난리 났었죠"

중앙일보

입력

어머니와 아들이 차례로 국회에 들어가 ‘모자 국회의원’ 1호 기록을 세운 도영심(왼쪽) 전 의원(13대)과 이재영 의원(19대). 두 사람 사이엔 스텝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도 전 의원이 2008년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게 선물한 뻥튀기가 놓여 있다. [박종근 기자]

‘청년’이란 사전적으론 20대 남녀를 가리킨다. 그러나 새누리당 청년위원장은 주로 40대가 맡아왔다. 강용석(44·전 국회의원), 오신환(42·전 시의원) 전 위원장 등 근래까지 40대가 대부분 청년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그만큼 젊은 정치인이 새누리당에선 ‘품귀’였다. 이 자리의 주인이 다소 젊어졌다.

 지난 3일 청년위원장으로 선출된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 38세의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다. 여의도에서도 흔치 않은 ‘엄친아’다. 14세 때 누나(일레나 리, CNN 홍콩 부사장 겸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장)와 미국 유학길에 나서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월스트리트에서 트레이더로, 다보스포럼으로 잘 알려진 WEF(World Economic Forum)란 국제기구에서 일하다 새누리당에 영입됐다.

 청년위원장은 새누리당 ‘주요당직자회의’ 멤버다. 공식적으로 ‘주요당직자’로 명명된 자리다. 그가 청년위원장이 되기 일주일 전쯤 그의 어머니는 국제기구 수장에 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민정당 전국구 의원을 지낸 도영심(66) 전 의원. 우리나라 1호 ‘모자’ 국회의원이다. 도 전 의원은 20년 넘게 아프리카 빈곤 퇴치에 앞장서 왔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통한 빈곤 퇴치(Sustainable Tourism-Eliminating Poverty)’를 목표로 2004년 유엔 세계관광기구(WTO) 산하에 설립된 스텝(ST-EP)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스텝재단이 지난달 29일 제20차 유엔 WTO 총회에서 독립된 국제기구 지위를 얻었다. 어엿한 국제기구의 수장이 된 것이다.

 도 전 의원의 남편이자 이 의원의 의붓아버지는 3선 의원을 지낸 권정달 전 의원. 도 전 의원은 93년 권 전 의원과 재혼했다. 한 가정에 세 명의 전·현직 국회의원이 배출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제기구 수장이 된 도 전 의원과 새누리당 신임 청년위원장 이 의원을 만났다.

단순한 구호보다 먹고사는 법 알려줘

 도 전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국제기구, 스텝재단이 하는 일은 뭘까.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에 가서 동네가 있으면 여성을 50명 정도 모아요. 그들한테 수공예품을 만드는 법을 알려줘요. 그들이 종지도 만들고 페인트도 하면서 관광상품을 만들게 합니다. 그러면서 그 커뮤니티가 발전하게 돼요.”

 민박을 할 수 있게 창업 노하우도 알려준다.

 “오랫동안 프랑스·영국 등의 식민지에 살았기 때문에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많아요. 언어가 기본적으로 되니깐 침대보를 정리하는 법, 아침식사 챙기는 것들을 알려주죠.”

 소액신용대출 방식의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도 주요한 일이다. “그 나라의 은행과 연계해서 한 사람에게 15달러를 꿔줍니다. 2만원 정도 되는 돈을 3년간 빌려주는 거예요. 1년에 6개월마다 25% 이자를 냅니다. 그런데 그런 적은 돈이 개인과 가족 그리고 마을 전체의 삶을 바꿔놓거든요. 그 작은 기적이 제 큰 보람이고 행복입니다.”

 스텝 활동 중 가장 뭉클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2008년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였어요. 작은 도서관을 개관하는데 반기문 사무총장도 오셨죠. 잔치를 하려면 먹을 것을 줘야 하잖아요? 처음엔 초코파이를 생각했는데 너무 무겁기도 하고 비행기로 싣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았죠. 그래서 생각한 게 뻥튀기였어요. 아예 뻥튀기 기계를 청계천에서 사갔죠. 동네가 완전히 뒤집혔어요. 뻥튀기를 하나 들고 먹을 줄 몰라 서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뻥튀기를 감상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그 모습이 마치 좋은 와인 한잔 마실 때 음미하는 모습 같았어요. 한 아이가 제 등을 손가락으로 툭 쳤어요. 그 힘이 너무 약해서 저는 모기가 무는 줄 알았어요. 빈 그릇을 들고 있더군요. 한 그릇만 달라고 온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 너무 안됐죠, 슬프죠.”

 그는 “우리 어릴 적을 보는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맨발로 다니다가 그 다음에 신발을 신고 그 다음엔 학교를 가고 뭐 그런 식이었잖아요. 우리가 못살았을 때하고 똑같죠”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도 국제기구와 인연이 많다.

 대학 졸업 후 이 의원은 세계경제포럼(WEF)의 아시아팀 부국장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젊은 글로벌 인재’ 영입을 물색하고 있던 새누리당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 “다보스포럼 등 국제사회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내 나라를 위한 정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열심히 하면 4년간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어 그 어떤 직업보다 보람 있는 일”이란 도영심 선배 의원의 조언도 있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했던 그는 19대 국회에선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의 인천 송도 유치에 힘을 쏟았다. 소속 상임위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위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그는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의 GGGI(글로벌녹색성장기구)와 함께 기금을 조성하고 실행력을 배가할 수 있는 GCF 사무국을 국내에 유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해 10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세계적 석학 제프리 색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방한했을 땐 그에게 “GCF 사무국을 한국이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날 오후 송도에서 개최된 GCF 2차 이사회에서 제프리 색스 교수는 한국이 GCF 사무국을 유치해야 한다고 적극 설명했고, 이런 제프리 색스 교수의 지지는 송도가 독일의 본, 스위스 제네바를 제치고 최다득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탄자니아 갔더니 ‘마담 도’ 유명”

 이 의원은 작년에 방송인 박정숙(43)씨와 결혼해 지난주 아들을 낳았다. 요즘 들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일이 많아졌다. 식탁에 가족이 모이면, 전·현직 국회의원이 세 명이고 선수(選數)를 합산하면 5선이다. 이 의원은 11대 국회에 입성한 아버지 권정달 전 의원부터 19대 의원인 자신까지 치면 대한민국 정치사가 보인다고 했다.

 도영심 전 의원이 1980, 90년대 국회의 기억을 꺼냈다.

 “저는 국회의장실에 국제회의 전문가로 78년에 들어가 10년 만에 국회의원이 됐죠. 외무 업무를 했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된 것도 그 선상에서 이어진 거죠.”

 그는 남녀차별이 심하던 시절 여성 의원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면 남자들이 쫙 앉아있는데 여자는 네 명뿐이었거든요. 그럼 남자들이 ‘저 여자 머리 어디서 했고 스커트 길이는 어떻고’ 그러는 소리가 들렸어요.”

 전국구, 지금의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설움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지역구 의원들은 전국구는 ‘진짜 의원’이 아니라며 모임에도 잘 끼워주지 않았어요. 밖에서 데리고 온 자식 취급 비슷한 거죠.”

 그러나 여야 의원들 사이에 ‘낭만’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는 국회의원이 낸 법안이 몇 개나 되는지, 누가 출석했는지 따지면서 국회의원 점수 매기고 그런 게 없었어요. 감히 힘 있는 분들을 누가 점수 매기느냐는 분위기였죠. 그렇지만 상당한 낭만이 있었어요. 저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여당 의원보다 야당 의원들한테 가서 상의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각박해졌다고 할까, 의원들이 뭔가에 쫓기는 것 같아요.”

 이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국회는 화려함이나 특권 같은 건 없고 ‘일과 공부’만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제가 속한 연구모임만 4~5개나 된다”며 “예습하고 복습하고 가서 듣고 하다 보면 일주일, 한 달이 금세 지나곤 한다”고 피곤한 얼굴을 해 보였다.

 “외국 언론에 나오는 대한민국 국회는 일 안 하고, 세금 뜯어먹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곳이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대한민국 국회만큼 일이 많은 곳도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도 전 의원은 아들을 기를 때 일관되게 유지했던 철학이 ‘That’s your life’였다고 말했다. ‘네 인생, 네가 알아서 결정하고 책임지라’는 뜻이다.

 “굳이 꼽는다면 재영이가 그저 돈 잘 버는 프로골퍼가 됐으면 했죠.”

 그러나 ‘운명처럼’ 아들 또한 자신과 남편이 갔던 길을 뒤따르고 있다.

 그는 이 의원에게 “정치에 접어든 이상 재선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구 의원으로 자리를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말이다.

 이 의원은 지난 8월, 강창희 국회의장을 수행해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다가 어머니의 이름을 뜻밖의 곳에서 들었다고 한다.

 “탄자니아에 갔을 때 도서관이 하나 있더라고요. 담당자가 나와서 설명을 하는데 ‘마담 도, 마담 도’ 얘기를 많이 해요. 나중에 강창희 의장이 ‘이 사람이 마담 도의 아들이다’라고 하니 굉장히 반가워하더라고요.”

 그는 “아프리카 대학생들이 도서관을 열심히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기여일지 모르겠지만 기적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다”며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속내를 열어 보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너무 바빠 아침밥도 못 먹고 학교에 가곤 했어요. 집에 오면 안 계시고, 그런 것이 싫을 때가 많았어요.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이의 어머니가 돼줬다는 걸 이해해요. 그리고 존경합니다. 어머니보다 선배로….”

글=안지현 JTBC 기자 anz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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