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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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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왕에게 새 술을 만들어서 헌상한 사람이 있었다. 왕은 이것을 마셔본 다음에 술맛을 찬양했다. 그러나 이렇게 맛이 좋으면 앞으로 이것으로 나라를 망쳐놓는 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면서 새 술의 발명자를 물리쳤다는 얘기가 있다.
맛 좋은 술처럼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술을 가리켜 감액 감파 감로 화로 함춘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술은 또 사람들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는 뜻에서 「망우」라는 말도 있고 잘 마시면 몸에도 좋다하여 「양생주」라고도 했다. 그러나 술은 인생을 망치는 화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광약」 「화천」이라고도 했다.
수호전처럼 술 얘기가 많이 나오는 책도 드물지만, 여기에서는 탁주를 「보인」이라 했고, 청주를 「성인」이라 표현했다. 「천유」라는 말도 있다. 이것도 아마 탁주 얘기인 것 같다.
이밖에도 과실주를 태평군자라고 한 말도 있지만 자고로 중국이나 한국에서 서민들이 가장 즐기던 술은 역시 성인이었다. 이태백 이도 그 주량으로 봐서는 탁주를 제일 즐겼던 것 같다. 우리 나라의 김립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주는 약주, 탁주는 막걸리라 불렀다. 맛으로 치면 약주가 막걸리보다 훨씬 더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네 문학에까지 즐겨 나오는 술이 막걸리인 것은 그것이 예부터 서민층의 술이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태원이 <천변풍경> 속에서 그린 30년대의 서울의 뒷골목에선 낮에도 막걸리 냄새가 물씬거리고 있었다.
이런 막걸리가 세계에서 제일 영양가가 높은 술이라고 일본의 한 학자가 임상실험의 결과를 발표했다.
당연한 얘기인 것 같다. 다만 진짜 막걸리의 맛을 그가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만큼 이즈음 우리네 주변에서는 진짜 막걸리를 볼 수 없게된 때문이다.
술맛이 좋으려면 우선 물이 좋아야하고 누룩도 좋아야 한다. 한국의 막걸리가 좋았던 것은 쌀과 물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새처럼 「카바이드」에 의한 인공누룩과 맑지 못한 수돗물로 만든 막걸리에서는 옛 맛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라에 따라 술 자랑도 달라진다. 어제까지는 우리네의 멋과 맛은 막걸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막걸리의 진짜 맛마저 우리는 잊은지 오래 되는 것 같다. 가난한 농촌에서 막걸리 식품에 대용하도록 개발하면 좋겠다는 동 일인학자의 말도 어딘가 서글픈 마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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