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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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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3년 8월 30일자 30면>
'이석기 내란음모' 공안 수사의 전범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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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과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건의 실체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냉정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제 국정원은 이 의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28일 체포된 홍순석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에 대해선 사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의원 등의 주요 혐의는 지하혁명조직을 구성해 유사시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케 할 것을 모의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나 검찰이 구체적인 수사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의원과 통진당은 “진보·민주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국정원의 용공 조작극”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거 공안사건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국민이 1970~80년대 시국 관련 사건의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내란음모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던 사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집혔다. 고문 등을 통한 불법 수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법사(司法史)의 오점으로 남게 된 것이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강압 수사를 통해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조작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법원이 압수수색·체포 영장을 발부한 것도 수사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사실을 부풀리거나 수사 과정에서 절차상 잘못을 범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더욱이 국정원 개혁이 추진되는 시점에 사건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국면 전환용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상황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번 수사가 공안 수사의 전범(典範)이 돼야 한다는 점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그간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많은 피와 땀을 흘려야 했다. 그 결과 국민의 기본권도 국가의 존립 못지않게 중요한 헌법적 가치라는 합의를 이뤄냈다. 그 어떤 혐의를 받고 있더라도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 수사에서 나온 결과 그대로를 빼거나 보탬 없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체제 전복’ 혐의가 사실이라면 더더욱 철저히 절차적 정의에 따라 수사와 재판에 임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우위를 보여주는 길일 것이다.

 이 의원과 통진당도 국회의원이란 자리와 공당(公黨)에 걸맞은 자세로 수사에 응하길 촉구한다. 그제 법원 영장에 따른 압수수색을 막은 것은 분명한 수사방해다. “혐의 전체가 날조”라며 ‘투쟁’에 나설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게 온당한 태도다.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으면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제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이란 충격에서 벗어나 성숙한 법치주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할 때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단계 더 진화하길 기대한다.

한겨레<2013년 8월 30일자 35면>
진보당 사건, ‘사실과 증거’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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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수사는 사안이 지닌 메가톤급 폭발성에 비해 아직까지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은 거의 없다. 국정원이나 검찰의 공식 설명도 없이 출처가 불분명한 각종 언론보도만 무성할 뿐이다. 제3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섣부른 예단을 삼간 채 사건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처리되는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정원은 어떤 부풀림도 없이 명백한 증거를 통해 진보당 관련자의 혐의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이 사건을 접하며 느끼는 상식적 의문은 ‘통합진보당이 뭔가 꼬투리를 잡힐 짓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내란음모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데 모인다. 실제로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피의자들이 구체적으로 내란 계획을 세우고 또 실제 실행 능력이 있다는 점 등이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치된 견해다. 일부 정치적 과격분자들 사이에 오간 발언에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딱지를 붙인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공안당국이 거창하게 터뜨렸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등의 결과가 어땠는지를 국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만약 국정원이 ‘일단 사건을 터뜨렸다가 나중에 흐지부지돼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수사 결과가 ‘태산명동서일필’에 그친다면 그 책임은 단지 국정원 차원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진보당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이야말로 무덤에 파묻힐 것” 등의 격앙된 외침으로 해결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사실 진보당은 지난 총선의 부정경선 사태 등을 거치며 국민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따라서 국민의 눈높이와 법 감정 등을 더욱 의식하며 수사에 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석기 의원이 하루 동안 잠적했다가 뒤늦게 나타난 것 등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비록 지금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민감한 상황이긴 하지만 진보당은 국회에 의석을 가진 공당답게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좀더 솔직하고 정정당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수사의 공정한 진행을 위해서는 공정하고 정확한 언론보도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이미 국정원의 혐의 사실 흘리기와 언론의 받아쓰기식 보도, 여론재판식 보도 등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이석기 의원이 변장을 하고 택시를 타고 잠적했다’는 따위의 보도도 난무한다. 거기다 선정적 보도로 정평이 난 종합편성채널들의 존재까지 고려하면 언론보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런 점에서 수사당국이 수사 진행 과정을 공식적으로 브리핑할 필요도 있다. 피의사실 공표죄 등의 법적 걸림돌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사안의 중대성, 국민의 알권리, 이번 수사에 쏟아지는 의혹 등을 고려할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수사당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출처도 불분명한 기사가 마구잡이로 양산되는 것보다는 수사 브리핑을 공식화하는 것이 언론보도의 부작용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이 결코 국정원의 정치개입 문제를 희석하고 개혁의 당위성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동안 국정원 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꼽혀온 것이 바로 국정원의 수사권 박탈인데 국정원은 보란듯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이번 수사가 부풀리기 수사, 덮어씌우기 수사가 아니라 엄정한 법과 원칙, 증거를 기초로 진행되는지를 더욱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이유다.

[논리 vs 논리] '공안의 추억' 경계하는 중앙 … 시민의 역할 강조하는 한겨레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직 국회의원이 내란죄 관련 혐의로 구속된 것은 1966년, 한국독립당내란음모사건 때 김두한 의원이 구속된 이후 47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 역사에 있어 내란음모죄는 독재정권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쓰이곤 했다. ‘빨갱이’라는 꼬리표에는 그 어떤 논리보다 강한 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사회에서 안보사건은 격한 불안과 분노를 일으킨다. 공안사건 앞에서 합리적인 판단은 자리할 곳이 없었다. 내란음모죄는 안보를 앞세워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수단이 되곤 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다.

두 신문 모두 극우·극좌 진영 논리에 우려 표시

 중앙일보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는 이제 ‘강압수사를 통해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조작할 수 있는 시대’에서 벗어나 있다. 세네카는 분노와 불안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판단을 늦추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옳은지 심사숙고하기 위해서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두 신문은 감정에 휩싸인 극우와 극좌 세력의 진영논리를 경계한다. 각 사설은 ‘사실과 증거’에 충실한 판단, ‘절차적 정의에 따른 수사와 재판’을 촉구한다.

또한 중앙일보와 한겨레 모두 ‘입증책임의 원칙’을 앞세운다. 입증책임의 원칙이란 자기 주장이 옳음을 증거와 논리를 통해 증명해야 함을 뜻한다. 입증책임은 국정원과 통합진보당 모두에게 해당한다. 국정원은 이석기 측이 내란음모죄에 해당될 만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는지, 내란을 실행에 옮길 능력이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다. ‘혐의 사실 자체가 날조’라고 주장한다면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나아가 중앙일보는 국정원이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는 역풍을 맞을 것이라 경고한다. 국정원이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사건을 터뜨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두 신문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극우와 극좌 세력은 끊임없이 위기를 앞세우며 감정에 호소한다. 그러나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는 절차적 정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사실과 근거에 기대어 진실을 먼저 가린다는 뜻이다. 판단과 평가는 그 다음이다.

“공정 수사” 한목소리 내지만 해법엔 미묘한 차이

 하지만 사태의 해법을 찾는 데 있어 두 신문의 입장은 미묘하게 갈린다. 한겨레는 시민사회의 역할에 방점을 둔다. 이번 수사가 ‘엄정한 법과 원칙, 증거를 기초로 진행되는지를 더욱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고 경계의 수위를 높인다. 반면, 중앙일보는 국정원과 검찰에 직접 메시지를 던진다. 이번 수사가 ‘공안 수사의 전범(典範)’이 될 정도로 ‘철저히 절차적 정의에 따라 수사와 재판에 임’하라고 다그친다.

 여기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보수주의와 한국적인 진보진영의 특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원래 보수주의는 국가의 개입을 싫어하며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소중히 여긴다. 이렇게 볼 때 중앙일보는 보수주의의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 점은 ‘국민의 기본권도 국가의 존립 못지않게 중요한 헌법적 가치’임을 강조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한겨레는 다른 관점에서 사건에 접근한다. 옛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는 독재의 어두운 기억이 드리워져 있다. 국정원도 댓글 사건으로 정권 유지를 위해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앞서의 기관들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 한겨레는 국정원 개혁과 이번 사건을 엮어서 바라보려 한다. 따라서 한겨레의 주장은 보수와 진보의 틀로 분석할 수 없다. 독재와 이에 맞서는 반독재 운동의 틀로 바라보아야 의미가 제대로 다가온다.

 한국에서의 진보주의는 평등과 복지를 주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진보진영의 역사는 독재에 맞서는 투쟁의 기록이기도 했다. 정보기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를 강조하는 한겨레의 목소리에는 한국적인 진보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처벌은 절대로 과거의 생각에 적용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미래를 보아야 한다.” 세네카의 말이다. 냉전시대 논리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볼 수는 없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국가안보를 튼실하게 하는 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중앙과 한겨레의 생각이 같아 보인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보수주의와 한국적인 진보주의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다음 주 논점 무상보육
9월 24일자에는 무상보육 재원 마련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비교 분석글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