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3자회동, 투명성만큼 진정성 담아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한국정치사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영수회담은 대부분 실망스럽게 끝났다. 꼬인 정국을 풀기보다 서로 이견만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남도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열려 ‘밀실 회동’이나 ‘물밑 거래’라는 비난을 받았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인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20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75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때 뒷돈을 받고 야합했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들어 영수회담의 투명성은 크게 높아졌지만 정치적 성과는 신통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16일 열릴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회동은 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열리고 회담 내용이 모두 공개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청와대는 회담 의제를 사전 조율할 뜻도 보이지 않아 ‘유리알 대화’ 형식으로 대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전격 사퇴 이후 민주당 내에선 3자회담 반대론이 확산되고 있다. 자칫 회담이 전격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예정대로 회담이 열린다면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과거 회담 때마다 불거졌던 ‘물밑 거래’ 의혹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자회동에 문제도 많아 보인다.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가 서로에게 비공개로 할 말이 있을 텐데, 모든 걸 다 공개한다는 조건 아래 얼마나 속마음을 털어놓을지 의문이다. 그럴 경우 대치 정국을 풀 타협안을 끌어내기도 어렵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국정원 개혁,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 박 대통령의 사과만을 거듭 요구하고, 박 대통령은 야당의 국회 복귀와 국정 협조만 촉구하다 회담이 끝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측이 이번 회담을 앞두고 유달리 ‘투명성’을 강조하고 나선 배경도 그렇다. 어차피 양측이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큰 만큼 물밑 조율 대신 대화 내용을 전부 공개해 국민 지지를 구하는 게 낫다는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야당 역시 장외투쟁의 출구전략 일환으로 ‘투명한 회담’ 제안을 수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럴 경우 3자회동은 3인3색의 모노드라마로 끝날 수 있다. 투명성도 중요하지만 국회를 정상화하고, 민생·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진정성 있는 성과를 내야 한다. 3자회동에서 대승적인 합의 없이 정치 공방만 되풀이한다면 국론은 더욱 분열되고 갈등은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안 하느니만 못한 ‘투명 회담’이 되는 것이다.
2005년 영수회담 당시 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한 치 물러섬 없는 강경한 어조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물리쳤다. 작가 출신인 김한길 대표도 20년 전 방송 진행자 자격으로 박 대통령을 인터뷰하며 달변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국민들은 두 사람의 개인기를 보고 싶은 게 아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서로 양보하며 손 잡는 포용과 화합의 정치를 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