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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공인의 스캔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신라시대에 있었던 유명한 스캔들 셋.

 첫째, 정치에 실패하고 문란한 여왕으로 오해되는 진성여대왕과 관련된 것이다. 그는 죄인들을 사면하고 세금을 깎아주며 황룡사에 대규모 불법(佛法) 강의를 열었다. 가난한 효녀 지은과 그 어미를 위해 집과 곡식을 보내는 등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후 정치에 흥미를 잃고 나라 곳간이 비자 호족과 농민의 협공을 받게 된다. 반대 세력이 여왕의 사생활을 문제 삼는 다라니 은어가 적힌 주문을 살포한 후 민심이 서서히 이반됐다. 여왕은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해 12월에 죽는다.

 둘째는 서동요다. 서동은 본래 왕궁에서도 살지 못하고 마를 키우며 홀어머니를 모시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신라의 선화공주가 자신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노래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해 결국 공주와 결혼해 백제 무왕이 된다.

 셋째는 원효대사다. 불법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자루 빠진 도끼를 주면 하늘을 버틸 기둥을 깎아 보겠다는 노래를 퍼뜨려 공주와 합방해 설총을 낳는다.

 종이가 귀했던 고대시대에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구전 노래는 제일 가는 여론 조작의 통로였다. 그 흔적이 유언비어인 셈이다.

 요즘엔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지만, 소문이 퍼지는 방식과 내용은 옛날과 유사하다. 연애사, 혼인과 이혼, 돈·권력과 관련된 음침한 소문 등이 이른바 ‘증권가 지라시’ 등을 진원지로 해서 카톡, 포털, 팟캐스트 등 비교적 최신의 매체부터 주류 신문·방송까지 넘나든다. 이른바 남의 사생활이나 캐고 있는 것을 ‘하수구 저널리즘’이라고 공격했던 신문도 있었지만 사회가 얄팍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점잖고 골치 아픈 내용보다는 가볍고 감각적인 이야기에 더 솔깃해진다. 특히 원효나 하이데거, 푸코 같은 점잖은 학자들이나 지스카르 데스탱이나 빌 클린턴 같은 수퍼 파워들의 예상 밖 사랑 이야기는 그들이 갖고 있는 평소의 권위적 이미지를 전복시킨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은 더욱 환호한다. 흥미로운 반전이 있으니까. 권태로 죽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흥분시킬 마약이나 술을 찾는 마음으로 소문을 즐기기도 한다. 공인들의 사생활이 술자리에서 니코틴과 함께 안주 거리로 등장하는 이유다. 무력감, 질투, 소외감은 남에 대한 허접한 소문으로 포만감을 느낀다.

 청교도나 유교적 윤리가 지나치게 사람들의 감성을 메마르게 한 과거에는 억압적 도덕의 허위성에 대한 반발이 소문 전파의 동력이었다면, 혼외 관계와 비도덕이 일상화된 요즘엔 “너도 별 수 없이 나처럼 나쁜 짓 하고 다니네”하는 동지의식이 소문을 확산시킨다.

 자연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처럼, 집단정신과 행동 역시 착하면서 잔인하다. 소문의 당사자들이 진성여왕처럼 소문의 희생자가 되건, 서동이나 원효처럼 집단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애정신을 실천하건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이른바 주류 언론이나 식자들까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설을 제대로 확인도 않고 퍼 날라 정작 중요한 이슈들은 소홀히 되는 것이 안타깝다. 예수도 막달라 마리아와 특별한 관계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공인들은 스캔들을 유명세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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