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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식 김치와 돼지 생목살의 궁합 끊을 수 없는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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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26면

1 광화문집 김치찌개. 시원하고 칼칼하면서 돼지고기가 푸짐하다.

긴 유럽 출장 끝에 터키의 안탈리아(Antalya)라는 곳에 가게 된 적이 있었다. 휴양지로 유명한 지중해변 도시답게 풍광이 아주 아름다웠다. 하지만 오랜 출장에 지친 탓인지 집에 돌아가고만 싶었다. 거창한 서양식 만찬들도 신물이 났다. 다 필요 없고 그저 구수한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서 한 그릇 뚝딱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밀려드는데 문제는 그곳에는 한국 식당이 없다는 것이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23> ‘광화문집’ 김치찌개

마침내 일을 마치고 이스탄불로 옮겨왔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국 식당이 어디 있는지를 찾았다. 두 군데 정보를 얻어서 주소를 들고 찾아 나섰다. 택시를 타고 한 30 분쯤 걸려서 첫 번째 주소에 어렵게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식당 흔적도 없었다. 잘못된 주소였던 것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두 번째 주소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다행히 한국 식당이 있었다. 하지만 또 좌절이었다. 하필 그 식당이 쉬는 날이어서 문을 닫았던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 다시 그곳을 찾아 갔다.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뭔가에 홀린 듯 안 갈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드디어 입성에 성공했다. 김치찌개를 시켰는데 돼지고기 대신에 가공 베이컨을 넣고 끓이는 것이었다. 터키가 이슬람 국가라 돼지고기를 구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도 그 김치찌개는 내가 평생 먹어봤던 것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맛이었다. 하긴 그때 그 간절함에는 무엇을 어떻게 끓였어도 맛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건 그동안의 피곤함과 외로움은 그 김치찌개 한 그릇에 싹 날아갔다.

남들보다는 외국 음식에 더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내가 한국 음식을, 그것도 김치찌개를 간절히 원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아무리 잘난 척해도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2 광화문집 외부 모습. 어떻게 이런 집이 아직도 남아 있나 할 정도로 옛날 모습 그대로다. 간판은 개업할 때 그대로라고 하니 40년이 넘었다. 3 광화문집 내부.

그 다음부터는 외국을 나가게 되면 자동적으로 김치찌개를 찾아서 먹게 되었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음식의 1순위도 김치찌개가 되었다. 평소에도 김치찌개를 자주 찾게 되면서 잘한다는 집은 꼭 찾아가 보는 습관도 생겼다. 사실 김치찌개는 어디에서나 하는 흔한 메뉴이긴 하지만 맛있게 하는 집은 생각보다 드물다.

내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 집은 광화문 부근에 있는 ‘광화문집’이다. 주인 노병복(69·여)씨가 40여 년을 같은 자리에서 운영해온 광화문 터줏대감 식당이다. 처음에는 한식을 이것저것 하다가 김치찌개 한 가지로 특화한 것이 벌써 20여 년이 되었으니 전문점 중에서도 전문점이다.

이 집의 김치찌개는 시원하고 칼칼하면서 잘 숙성된 김치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매년 가을 김장 때 2000 포기 정도를 직접 담가 숙성시켜 사용한다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의 고향이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여서 젓갈을 넣지 않고 담근 김치를 사용하는데, 진한 맛이 나지는 않지만 대신에 깔끔한 맛이 나는 것이 묘미다.

또 다른 특징은 질 좋은 목살 부위 돼지고기를 아주 푸짐하게 넣어준다는 것이다. 다른 집에서는 2인분은 됨직한 고기가 이곳에서는 1인분이다. 30년 된 단골 정육점에서 매일 배달해주는 생고기를 사용한다. 냉동하지 않아서 탄력이 살아 있는 돼지고기가 김치 국물과 함께 끓여지면서 김치 맛이 배어들면 환상의 궁합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40년 내공의 양념이 곁들여지면서 이 집의 중독성 있는 김치찌개가 완성된다.

‘광화문집’은 7평 정도밖에 안 되는 작고 소박한 공간이다. 옛날 집 그대로의 허름한 모습이다. 요즘의 화려한 식당들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래도 이곳을 좋아하는 단골들이 항상 줄을 선다. 모두 이 집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짜임새 있는 맛을 좋아하고 옛날 그대로의 변함없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이곳의 김치찌개는 그냥 음식이 아니다. 먹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소울 푸드(Soul Food)’이고, 그래서 이 집은 ‘소울 플레이스(Soul Place)’가 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광화문집: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 43. 전화 02-739-7737. 주말에도 영업을 하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일이 있으면 쉴 수도 있어서 미리 전화를 해봐야 한다. 김치찌개 7000원. 계란말이 5000원.



음식, 사진, 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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