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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범람하는 힙합 페스티벌, 개성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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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요 근래 한국 대중음악계는 ‘디스’전으로 들끓었다.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의 줄임말로 힙합 뮤지션들이 랩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무력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래퍼 스윙스가 포문을 열고 이센스,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 등 유명 뮤지션들이 실시간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노래를 발표했다.

 인신공격에 다름없는 가사 내용은 연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동시에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CJ E&M 주최 ‘원 힙합 페스티벌’은 공교롭게도 디스전의 수혜를 입었다. CJ 측은 “디스전이 시작된 주말 예매자 수가 평소의 5배로 뛰어올랐고, 공연 당일엔 총 9000명이 운집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게다가 성공리에 개최된 대형 힙합 축제로 기록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예정됐던 ‘붐밥 힙합 페스티벌’은 다음 달로 연기됐다. 당초 주최 측은 미국의 힙합 뮤지션 에이셉 라키가 처음 내한한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에이셉 라키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의 붐밥 페스티벌을 가리켜 “It’s a fake event(그건 가짜 이벤트야)”라고 적었다. 나라 망신이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 7월 열릴 예정이었던 ‘월드 힙합 페스티벌’은 공연 5일 전에 취소됐다. 음악비평가 김봉현씨는 “그동안 적지 않은 힙합 페스티벌이 연기됐다고 하고는 조용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힙합 붐에 기댄 힙합 페스티벌은 앞으로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달 말 대전에서 열릴 예정인 ‘힙합 코어 페스티벌’,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더 크라이-스탠드업 코리아’ ‘K힙합네이션’ 등이다. 경험 없는 기획사가 눈에 띄어 불안하고, 출연진이 모두 엇비슷해 아쉽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 ‘난 알아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지 20여 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힙합 음악 레이블로 시작한 YG는 국내 1, 2위를 다투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했다.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른 곡 중 랩이 포함되지 않은 곡을 찾긴 어렵다. 조용필의 ‘헬로’에도 버벌진트와 옥택연 등 젊은 래퍼들이 참여했다. 확실히 한국 힙합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툭하면 취소되는 허술한 공연 기획은 찬물을 제대로 끼얹는다. 힙합 뮤지션들도 남만 ‘디스’할 게 아니다. 돈만 준다면 주최 측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출연진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일부터 삼가야 한다. 힙합의 주요 팬층인 10~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실망 대신 희망을 주려면 말이다.

이경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