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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정하면 맞춤수업 짜주는 대학, 이게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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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1일 찾아간 한림대(강원도 춘천시) 정문 옆엔 이달 초 준공한 지상 4층짜리 건물이 서 있었다. 수영장·스쿼시 경기장·농구장·피트니스센터가 갖춰진 ‘레크리에이션 센터’다. 학생들의 여가생활을 위해 한림대가 162억원을 들여 지었다. 체육대를 제외하면 수영장을 갖춘 대학은 드물다. 총장 집무실이 있는 대학 본관의 1층은 학생들의 휴게 공간으로 쓰인다. 한림대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쏟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건일(73) 총장은 “정성을 다해 실력 있는 학생들을 육성하는 지방대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직자 출신의 노 총장은 인하대에 이어 총장 경험이 두 번째다. 2006년 이후 한림대 법인 이사로 활동하다 지난해 2월 총장에 취임했다.

 한림대는 한강성심병원 등을 세운 의사 고(故) 윤덕선(1921∼96) 박사가 1981년 강원도 춘천의 성심여대 캠퍼스를 인수해 이듬해 문을 열었다.

 - 30년 조금 넘은 역사치곤 한림대의 인지도가 높다.

 “비록 작은 대학이지만 강하고 알찬 대학이다. 초기부터 인문학이 강했다. 또 정직하고 진실하게 운영되는 모범적 대학이다. 내가 인하대 개혁을 잘 이끌었다고 재단이 평가해 학교를 더욱 발전시키도록 총장을 맡겼다. 내 마지막 인생을 바칠 기회로 생각한다.”

신입생 영어·글쓰기 등 기초 교육 중점

 - 취임 후 학교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서울 소재 대학들 못지않게 학생을 잘 육성해야 한다는 게 내 의지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학생을 잘 키워 취업까지 이어지도록 해 주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다. 취임 이후 ‘맞춤형 진로 트랙’을 학과별로 구축하게 했다. 전체 학과 39개 중 36개에서 모두 190여 트랙을 만들었다. 학생 개인별로 희망 진로 목표에 맞춰 교과목을 수강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언론정보학부의 ‘광고·홍보 전문가 트랙’을 밟는 학생은 국제 표준에 맞춘 기준 과목을 모두 이수하면 대학 학위와 별도로 국제광고협회가 인증하는 학위를 따게 된다.”

 - 학생 실력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입학 때부터 기초 교육을 잘해야 한다. 우리 대학은 신입생에게 의무적으로 모의 토익을 보게 한다. 지난해엔 연 1회였는데, 올해부터 연 2회로 늘렸다. 이와 별도로 매월 모의 토익 시험을 무료로 실시해 원하는 학생은 몇 번이고 볼 수 있다. 토익 향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년별·수준별로 영어를 공부하게 한다. 놀라운 성과가 나오고 있다. 성적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면 수강료를 환급해주는데 올 1학기엔 수강생 611명 중 75% 이상이 환급을 받았다. 1, 2학년은 영어 졸업 인증제를 시행해 영어 실력이 일정 수준에 올라야만 졸업시키려 한다.”

 - 영어 외에 강조하는 기초 교육 분야는.

 “글쓰기다. 학생들이 대학에 오기 전에 제대로 글을 써봤겠나. 그래서 교수들에게도 일방적으로 강의만 하지 말고 학생들이 글을 써오고 발표하게 하는 과제를 주고, 학생 글을 교정해 주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와 연계해 ‘우리 글 상담소’를 운영 중이다. 3, 4학년 중 글 잘 쓰는 학생들을 뽑아 장학금을 주고 1, 2학년의 글을 지도하게 한다. 그러고 나서 교수들이 재차 1, 2학년의 글을 지도해준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림대는 이런 노력으로 교육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에 6년 연속, 잘 가르치는 대학(학부교육 선진화 선도 대학)에 4년 연속 선정됐다.

 - 학생 관리가 엄격하기로 유명한데.

 “1학년은 희망하는 학생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한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협동심·생활예절·배려를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기숙사에서 생활영어, 독서 작문, 레저 활동 같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말 그대로 정주대학(定住大學·레지덴셜 칼리지)인 셈이다. 기숙사 문을 자정에 닫고 그 시간 이후에 들어오는 학생에겐 벌점을 준다. 벌점이 많은 학생은 다음 기숙사 입사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신입생들로부터 ‘고등학교 같다’는 불평도 나온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대환영이다. 특히 여학생 학부모들은 마음이 놓인다고 반긴다.”

 한림대는 전체 재학생 8863명 중 31%가 기숙사 생활을 한다.

 - 특성화가 대학가의 대세다. 한림대의 방향은.

 “특히 지방대로선 특성화가 살 길이다. 우리 대학의 특성화 특징은 융합연구·교육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재단이 전국적으로 3000여 병상의 6개 병원을 운영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고령친화의료생명분야’ 특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 분야에 4년간 28억원의 교비를 투입한다. 이외에도 의생명 과학 분야, 언론정보학부·전자물리학부·컴퓨터공학과·전자공학과 등이 참여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콘텐트 분야, 그리고 융합신소재공학 분야도 특성화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한림대는 교원 확보에 적극적이어서 전임교원확보율이 178%에 이른다. 교수당 학생수(편제정원 기준)가 11.1명으로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수 업적평가 강화, BK21 사업 5개 따내

 - 교수들의 연구 업적을 높이기 위한 복안은.

 “취임 이후에 교수 연구업적 평가 기준을 대폭 높였다.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들의 90% 수준까지 연구 결과물을 내놓도록 교수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교비를 재원으로 매년 50억원 이상을 연구비로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 교육부의 브레인코리아(BK) 21 플러스 사업에 우리 대학 6개 사업단·팀이 응모해 5개가 선정됐다. 우리 대학의 연구 역량이 입증된 셈이다. 이에 따라 7년간 91억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게 됐다. 130억원을 투입하는 종합연구센터도 내년에 완공된다. 연구하기 좋은 대학은 산학 연계도 활발해지고 교육의 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재정이 취약한 대학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 각종 지표로 보면 한림대 재정 여건이 매우 탄탄한데.

 “지난해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세입 중 기부금이 평가 대학 중 2위였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수익용 기본 재산에서도 3위다. 사립대 중에서 등록금 의존율도 매우 낮다. 재단에서 지원하는 전입금 비율이 높은 덕이다. 재단에서 연간 200억원 이상을 대학에 지원하고 있다.”

지방대, 실력 키우고 재정 투명성 높여야

 - 지방대 육성을 위해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것은 없나.

 “우선 지방대 스스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실력 없는 대학이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거기에 더해 재정 집행에서 모든 것이 투명해야 한다. 지방대의 문제는 재정이 투명하지 못한 데서 온다. 비리가 드러난 대학은 방치하면 안 된다. 다만 지방대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갈 때까지는 정부가 지방대 지원 예산을 별도로 편성해주면 좋겠다. 새 정부가 지방대를 적극 육성하겠다고 하는데, 국가와 지역이 지방대를 활용하는 방법을 적극 찾았으면 좋겠다. 지방대가 지역·국가 발전을 견인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만난 사람=김남중 사회1부장

정리=성시윤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노건일 총장=194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58학번)를 나왔다. 서울대에서 석사, 건국대에서 박사 학위(행정학)를 받았다. 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서울시 종로구청장, 충북지사, 산림청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수석비서관, 교통부장관을 거쳤다. 98년 인하대 총장에 취임하면서 대학 경영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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