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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양처럼 순한 원주민 마오리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찬삼 여행기-뉴질랜드에서 제8신>
이 나라의 서울 웰링턴이나 최대의 도시 오클랜드의 거리에는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많이 보인다. 이들은 미국 대륙의 인디언에 비길 수 있는. 선 주민으로서 약 7백년 전에 커누를 타고 태평양의 섬에서 온 폴리네시아 계 민족이라고 한다 그런데 호주의 원주민인 흑인 아폴리니즈가 모두 험상궂게 생기고 미이라처럼 빼빼 마른 것과는 달리 이들은 미끈하게 잘 생기고 뚱뚱하다.
어쩌면 루벤스의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도 같다.
이들의 생활을 알아볼 양으로 마오리 부락을 찾았다. 마침 무용이 신나게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동양인이 왔다고 하면서 매우 반겼다.
그전에 책을 볼 때에는 이들이 호투적이어서 두렵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얼굴을 대해보니 놀랍게도 모두들 양처럼 순하고 착해 보인다.
베로 만든 전통적인 의상을 걸치고 얼굴에는 문신으로 메이크업을 하고는 멋들어지게 추는데 거의 춤의 내용은 옛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커누를 젓는 흉내를 내는 춤도 추었다. 이것은 그 옛날 하늘의 별빛을 방향 삼아 몇 척의 자그마한 커누를 타고 거친 바다를 건너 온 용감한 조상들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여자들은 노래를 하고 남자들은 이 노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춤이다 끝났는지 키가 늘씬하고 얼굴이 달덩이같이 환한 한 무희가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손목을 잡아당기며 『우리 춤과 노래를 감상하셨으니 이젠 당신나라의 춤을 한번 보여주십시오』한다. 춤을 못 춘다고 주저앉았지만 그 여자의 힘이 어찌나 센지 무대에까지 줄줄 끌려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훌륭한 고전무용이라도 하나 추면 얼마나 좋으랴만 춤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리벙벙했다. 익살스러운 그 여자는『어서 추세요』하면서 손뼉을 친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손을 놀릴 수도 없어 춤을 못 추니 제발 양해해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고 절만 꾸벅하고는 제자리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모든 사람들은 껄껄 웃고, 또 나의 손목을 잡아당겨 무대에 올려놓았던 그 여자는 그런 싱거운 법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국제법 아닌 국제예의로서 나는 이들에게 흡족한 답례를 못했으니 큰 실례를 저지른 셈이다.
이런 아쉬움을 남긴 채 이들의 환영만 받고 이곳을 떠났다.
어떤 시골에 가니 마오리족 아낙네들이 서로 코를 맞대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좋은 장면인 것 같아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더니, .어디선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남자가 쫓아왔다. 두 손을 불끈 쥐고 나를 때릴 듯이 위협하며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사진을 찍히면 자기의 분신이 포로가 된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현대생활을 하는 마오리족이 많은 반면에 아직도 이런 미신을 믿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마오리족의 인구는 지금 약19만이라고 하는데 추운 남도에는 별로 없고 북도에 거의 살고있다.
이들은 지금 노래와 춤을 즐기지만 한때는 매우 야만적이어서 부족사이에 잘 싸우고 포로를 잡아서는 그 고기를 먹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인과 큰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옛날 영국사람의 괴로움을 받긴 했으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스러운 원주민이 아닌가한다. 남아공화국과 같이 흑인을 차별하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현대문명의 혜택을 입고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백인과도 결혼할 수 있어서 백인 아내를 데리고 다니는 마오리족 신사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간혹 차별하는 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법률상 평등하기 때문에 이들은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일인사회에 동화하여 정치·경제·문화 방면에 진출하고있다.
호주의 타스마니아 섬의 원주민은 멸종했지만 이 나라 원주민 마오리족은 인구가 매우 늘어가고 있다. 이것은 완전한 사회보장제도의 덕택이 아닐까 한다. 이들에게는 아동수당이 있어 어린이를 얼마든지 낳아도 생활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야말로 노동자의 천국일 뿐 아니라 원주민 마오리의 천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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