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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저 팡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제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것조차 쑥스러울이만큼 파스칼 및 그의 『팡세』는 널리 알려져 왔고 애독되고 있다. 위대한 고전의 놀라운 성격은 그것이 시대마다 그리고 각 사람의 심정마다 항상 새로운 영감과 계시를 그 안에 찾게된다는 점일 것이다. 『팡세』 역시 이 영원한 변신을 거듭하여 왔으며,3백년 전에 쓰여진 이 작품이 오늘날에도 현대인의 심금을 울려주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고전이 그렇듯이 그 안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 다시말 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문제들이 부각되어있으며 우리가 『팡세』에 끌리는 점도 바로 이것이다.
『팡세』 가 단순한 수상록이나 내밀의 수기가 아니라 호교론을 위한 치밀하고 논리적인 준비작업의 소산이라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반 종교인 또는 무신론자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설득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이 작품은 일반 신학론과는 멀리 오히려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고 그의 온갖 야망, 자기기만, 혼미, 역설을 추적해 나감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출발, 그의 유일한 관심은 인간에 있었고, 그가 종국에는 신에까지 이른 것은 이 다양하고 심오한 인간학의 필연저인 결론으로서 이다.
『팡세』를 읽을 때 우리는 인간에서 신으로의 기나 긴 역정을 더듬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일직선상의 상승 과정은 아니며 오히려 끊임없는 우회와 탈선과 방황과 때로는 후회 등으로 엮어지는 고달픈 과정이다. 요컨대 그 안에는 인간의 온갖 계층이 점철되어 나가되 어떤 야릇한 유대로써 궁극의 구심점에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흔히 현실적이고 공리적인 관심의 노예가 되어 있다. 물질문명의 압력이 갈수록 증대되어 가는 현대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공의 힙에 끌려 허수아비처럼 허우적거리고있는 느낌이다. 흔히 말하는 인간상실 또는 소외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이 착잡한 현실생활 속에서 자아를 생각할 겨를이 없으며 혹시 한가로운 시간이라도 생기면 이번에는 모든 것을(자아까지 포함하여) 잊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간다. 파스칼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모든 기회에 『진실로부터 도망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파스칼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즉 인간의 진실, 자신의 진실로 되돌아가라는 것. 『팡세』 가운데 파스칼이 의도하였던 신의 증명은 아무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에서 신에의 이행>이라<이환(서울대 물리대 교수·불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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