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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이 근대화에 역행하는 일이라면, 우선 사과를 하겠지만, 그런데도 옛날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얘기 하나를 하자.
대만얘기이다. 대만에 가면, 모든 게 얼른 보기에 우리 나라와 엇비슷하고, 다만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르고, 가게나 모텔에서 아무나 보고 일본말을 하는 품이 다른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시내와 시외를 달리는 버스얘기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버스란 버스 는 모조리 좌석 버스이고,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처럼 군용 트럭에다 지붕을 씌운 것 같은 짐차는 눈을 씻고도 안 보인다.
곳에 따라서는 정류장에 표 파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손님들은 미리 표를 사 가지고 기다린다. 시간 맞추어서 오는 버스 에 오르면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복의 버스·걸에 제시한다. 버스·걸은 어느 버스에나 있다. 날씬한 몸매의 아가씨들은 허리에 가죽가방을 하나씩 달고있고, 그 속에는 「편치·키」와 차표가 들어있다. 손님이 버스에 오르면 유연히 버스 안 복도를 왕래하면서 차표를 끊어준다. 버스·걸이 끊어준 차표는 버스를 내릴 때 다시 차장에게 반환한다.
우리도 옛날엔 그랬다. 버스 속을 유연히 왕래하면서 차표를 끊어주고, 걷곤 하는, 제복의 버스·걸들이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은 해방 때부터의 일이다. 버스·걸들이 예쁜 제복과 차표 가방과「펀치·키」를 내동댕이치고, 호객꾼과 하역부의 처지로 발전한 것이 근대화라면, 그와 같은 근대화란 분명히 시민의 행복에 역행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버스 값이 또 오르고 ,15원·25원·20원·10원 서너 가지로 받는다고 하지만, 버스 값은 손님의 신분에 따라서, 또는 입석·좌석 하는 것으로 정할 것이·아니라 차라리 손님의 몸무게로 정해야 더 옳을 법도하다. 버스 타는 사람은 버스문턱에 오르자마자 인간에서 짐짝으로 변용 하기 때문이다. 예쁜 버스·걸이 보고파서하는 말은 아니다.
대만식 버스·걸이 있으려면 버스 는 짐짝이 아니라 사람을 실어 날라야하고, 사람을 싣고도 버스 속에 상당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 대만을 들먹여 무엇 하느냐. 우리도 옛날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정정>작일 본란 중 런던의 이스트·엔드는 웨스트·엔드의 잘못이었기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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