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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어려운 이유? 강남 역차별 때문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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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직은 아니지만 강남 지역 국회의원의 면면만 봐도 박근혜정부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지난해 4·11 총선에서 강남갑엔 심윤조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 강남을엔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천 받았다. 그런가 하면 서초갑엔 검사 출신의 김회선 전 국정원 제2차장이 등판했다. 이들 지역구는 ‘공천이 곧 당선’으로 통할 만큼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지지 지역이다. 그런 핵심 지역에 관료와 법조인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말 대선 승리로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역시 관료와 법조인 중용은 이어졌다. 주 오스트리아 대사 시절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맺은 인연을 발판으로 강남갑 공천을 받아 전국 최다득표(8만 2582표)로 국회의원이 된 외교관 출신 심윤조 의원을 만났다.

-용산구 이촌동에 살다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강남갑(삼성동)으로 이사왔다. 살아보니 어떤가.

 “정치 시작을 강남에서 했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과거 강남은 국내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씌워진 것 같아 안타깝다. TV에서 강남이란 말이 나오면 열에 아홉은 나쁜 뉴스다. 부패라든지 퇴폐·환락의 대명사처럼 돼있는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

-강남 주민은 선거 때 뭘 고려하던가.

 “투철한 안보 인식이다. 강남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과 고도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허술한 안보로 이걸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본인이 이룬 경제적 부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부인하거나 부정하는 정치 철학을 가진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당선 후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먼저 들은 말이 강남 역차별에 대한 불만이었다. 과거 정부의 지도자나 집권층, 일부 정당이 강남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인식이 강남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기에 그런 정치세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누구든 당선되는 건가. 그런데 거꾸로 ‘그렇게 쉽게 당선되니 지역구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틀린 말이 아니다. 긴장해야 한다. 주민 여론은 정당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강남도 새누리당이 안심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과거 선거와 비교해보면 큰 폭은 아니더라도 우리 당 지지도가 낮아지고 있다. 가볍게 넘길 게 아니다. 강남 주민 기대치에 맞는 사람이 와서 일하는 게 맞다. 나도 갑자기 전략 공천으로 왔다. (※원래 공천받은 사람이 역사관 논란으로 낙마했다.) 선거운동하러 다닐 때 거부감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다. 합당한 불만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국회에 있어야 하지만 매주 금요일은 꼭 지역구에 와 주민들을 만난다. 사무실에 사랑방 푯말을 붙여놓고 주민 좌담회를 연다. 또 민원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주민과 논의하는 타운홀 미팅도 한다. 그런데 강남 주민은 강남구 의원 정도라면 지역구 일만이 아니라 국가 일에 힘 쏟는 것도 보고싶어 한다. 외교관 출신이니 외교안보 쪽 일을 많이 하겠다.”

-가장 큰 지역구 현안은.

 “노후한 아파트 재건축이다. 강남의 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합선 위험에다 배관이 낡아 물이 새기도 한다. 먼저 세워진 오래된 아파트가 재건축하는 건 당연한 절차다. 강남 역차별로 인해 재건축 절차 등이 지연되면 안 된다. 단, 주민 의견을 우선하면서 지역 전체 발전에 부합하는 재건축 방향이 잡혀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놓은 재건축 방안은 지역 주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본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자. 외교관으로 해외 여러 곳에서 근무했는데 자녀 교육은 어떻게 했나.

 “주미 대사관 근무 후 난 귀국했지만 아들은 계속 미국에 남아 공부했다. 고등학교는 보딩스쿨(사립 기숙학교)이 아니라 지인 집에서 하숙하면서 공립인 워싱턴 매클린(McLean)고교에 다녔다. 이후 보스턴 인근 리버럴아츠 칼리지(학부중심대학)인 디킨슨대에서 유럽역사를 전공했다. 또 중국 베이징어언대에서 1년간 중국어 공부를 한 뒤 현지 한국회사에 취업했다. 딸은 초등학교 6학년과 중1을 미국에서 다녔는데, 두고 오기 불안해 함께 귀국했다. 이후 포르투갈 대사 시절 함께 갔다가 돌아와 대전국제학교(기숙사 학교)를 나왔다. 미 에머리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홍보회사에 다닌다. 외교관 자녀 중엔 여러 나라를 오가며 정체성 위기를 겪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해외에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교육받았으니 행운이다.”

-한국과 외국 학교를 다 경험했다. 뭐가 다르던가.

 “외국에선 애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 해결하는 방식을 찾도록 돕는 것 같다. 자기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잘 말하더라. 국내 공교육은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

-본인은 서울대 나왔다. 자녀도 한국에서 명문대 보내 인맥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나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경쟁의 틀에 밀어넣어진 것 아니냐.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나는 이런 경쟁 시스템에 적응을 잘해 비교적 성공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지금은 다양화 사회기 때문에 꼭 명문 대학에 가고, 남 보기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래야 행복해진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능력에 맞게 사는 게 행복한 거다. 외교부에서 일하는 동안 1년 365일 중 집에서 밥 먹은 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거의 매일 야근에다 모임이 있고, 주말도 없이 지냈다. 외국에 나가서도 주말조차 편히 쉬지 못했다. 이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우리 애들은 외교관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도 늘 가족에게 미안했는데 애들을 똑같이 키우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식에 가서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축구선수·디자이너라고 답하는 아이가 많다. 우리 때는 다들 대통령 되겠다고 하지 않았나. 다양한 직종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자기 능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해 오순도순 살면 좋겠다 싶다. 물론 외교관 자녀 중 유명 대학 나와 미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이도 많다. 나는 한번도 그런 걸 강요하거나 부러워한 적 없다.”

-재산이 98억원에 달해 재산공개 때 화제가 됐다. 든든한 경제력 때문에 아이들을 여유있게 교육할 수 있었던 건 아닌가.

 “장인어른(고 하원대 전 한송재단 이사장·시그너스 회장)이 자수성가하신 사업가일 뿐이다. 시계업체인 한국시티즌을 창업했다. 난 미국에서도 공립 학교에 보내는 등 애들이 평범하게 자라길 원했다.”

-언제가 취미를 ‘TV 보기’라고 밝혔던데.

 “쉴 때는 완벽하게 쉰다. 운동하거나 멍하니 TV 본다. 난 TV의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는 방에 처박혀 따로 컴퓨터 하고 엄마는 또 딴 거 하고, 이렇게 집이라는 공간에 같이 있지만 개인 벽을 치고 살지 않나. 하지만 TV를 함께 보면 식구끼리 모여 있게 된다. 그냥 같이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저런 대화도 하게 된다.”

글=김성탁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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