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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로 진출하는 세계의 대기업들 『값싼 노동력 찾기』경쟁 치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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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시장에서의 판매경쟁은 날로 격심해지고 있다. 미국·서독 등 세계 굴지의 메이커들은 신흥 일본의 극성맞은 상혼과 저임금에 바탕을 둔 싼 가격공세로 도처에서 패퇴하고 있다. 특히 노동집약적인 전자제품·전기제품·광학기계 등의 부문에서는 일본상품의 진출이 현저하여 기존 시장에서 독주하던 미국·서독 등의 대 메이커에 가격면에서의 경쟁력 강화라는 새로운 고민을 안겨 주었다. 이래서 세계의 큰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 찾기에 혈안이 됐고 노동력이 풍부한 대만·싱가포르·한국 등 동남아에서의 진출이 현저해졌다. 임금착취의 새로운 형태로서의 이 값싼 노동력 찾기 경쟁과 그 동인이 된 동남아의 노임실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유명한 서독 롤라이 회사는 그 절반값인 일본 카메라 때문에 판매량이 해마다 떨어졌다. 견디다 못한 롤라이사는 타도일본을 외치고 싱가포르에 1천2백60만불을 투자, 새 공장을 세웠다. 싱가포르 공장의 임금은 서독의 6분의1이고 일본 공장 임금의 3분의2밖에 안 된다. 세계시장에의 롤백을 노린 이 새로운 전략이 얼마나 효과를 얻을지는 알 수 없다.
유럽보다는 아직도 싸지만 일본의 임금도 지난 63년 이후 69년까지 2배로 올라 값싼 노동력 찾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4년동안 일본기업가들은 대만에만 40개의 공장을 세웠다. 이들은 일본의 30%밖에 안 되는 임금을 주는 TV수상기, 가사용구, 컴퓨터 부속품, 여자속옷 공장 등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임금을 주고 있는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포드자동차회사는 71년형 자동차에 쓸 발전기를 지금 일본 동지와 제휴, 생산키로 했다. 포드사는 이외에도 차내 에어컨에 쓰는 여러 콤프레서도 일본 디젤기기 회사로 하여금 만들게 했다. 임금이 싼 아시아에 부분품 공장을 차린 미국 회사는 수없이 많다. 한국에 집적회로 공장을 차린 시그네틱스 회사는 이들 제품을 미국으로 가져가 컴퓨터를 만들고 있는데 이 회사가 한국인 종업원에게 주는 월급은 45불로 이는 캘리포니아 본사 노동자 월급 3백50불의 8분의1에 불과하다. 서독 벤츠, 서전의 자아브 자동차 회사도 모두 임금이 싼 유고 핀란드에 공장을 차렸다. 한동안 싼 임금을 자랑했던 이탈리아도 최근 임금이 부쩍 올라 국내 최대 전자회사인 세미콘두토리사도 부득이 싱가포르에 공장을 세웠다.
가난한 나라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우선 당장은 고용증가, 외화획득, 기술습득 등의 이점 때문에 환영받고 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국내산업육성보다는 이들 외국기업의 지출을 환영하고 나아가서는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노동의 국제분업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이 선후진국간의 생산제휴가 선진국의 경우 끊임없는 임금인상 악순환 임금-물가인상 악순환의 한 돌파구이긴 하지만 그들 나름의 문제점도 없지 않다.
이탈리아만 해도 현재 54만명의 실업자가 우글거리고 1백50만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얻으려고 국외로 나가고있는데 큰 기업들이 이를 외면하고 싼 임금을 찾아 해외에 공장을 차리다니 말이 안 된다는 노조의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노조연합체인 AFL·CIO는 미국기업의 해외이주로 66∼69년간 70만의 실업자가 생겼다고 추계하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미국기업제품에 대해 세율을 올리도록 관세법을 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를 받아들이는 개발도상국에서도 문제는 있다. 이 같은 형태의 국제분업을 자국산업육성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당장의 실익에 우선해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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