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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짧은 시 사랑받는 건? 웃기니까 우리 얘기니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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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하상욱의 작품은 장난스럽다. 그럼에도 순간의 재치가 있다. 그런 그가 독자에게 묻는다. “공감하셨나요. 그렇다면 당신과 나 사이에 평범함이라는 교집합이 있는 겁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적 감수성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1987~88년 2년 연속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공전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던 서정윤의 시집 『홀로 서기』를 떠올려보자. ‘어디엔가 있을 /나의 반쪽을 위해/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태어나면서 이미/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홀로 서기’ 부분).

 미안하지만 요즘 세대에게 이런 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반세기 전에나 통하던 감수성이다. 대신 이런 ‘시 아닌 시’는 어떨까. ‘보고 싶긴 하지만/보여주긴 싫어서’(‘동창회 불참’), ‘어떻게 내게/이럴 수 있니’(‘연봉협상’), ‘연락하지 않겠다고/다짐하고 다짐해도’(‘야식집’), ‘있어줘서 고마워/이제부터 잘할게’(‘내일’), ‘알수없는 미안함/밀려오는 부담감’(‘정시퇴근’) 등등.

 짧고 쿨하고 유머와 반전이 깃들어 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게 시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본격 문학의 틀로 보면 단박에 “애들 장난이야”라는 식의 성토가 쏟아질 만하다.

 요즘 『서울 시』(중앙books)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하상욱(32)씨 얘기다. 올 2월 출간한 『서울 시』는 시집으로는 드물게 2만5000부나 팔렸다.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다. 트위터·카카오톡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시대의 감성을 건드린 게 주효했다. 그가 후속작 『서울 시 2』를 내놓았다. 서울로 상징되는 이 시대 소시민의 일상을 낚아챈 단상(斷想)을 130여 편을 담았다. 책 머리에 “전 요즘 시 팔아 먹고 살아요”라고 밝힌 하씨를 3일 오후 만났다.

신세대 감성 … “말장난 아니냐” 비판도

 - 일단 새롭다. 구상은 주로 언제 하나.

 “저녁에 샤워할 때. 맨몸이고 손에 아무 것도 안 들고 있어 집중이 잘 된다.”

 - 원고지에는 안 쓸 것 같은데…. 글이 완성되면 바로 업로드 하나.

 “아이폰5의 메모장을 주로 이용한다. 마음에 들어도 바로 올리지 않는다. 여자친구를 포함해 지인 4명에게 먼저 보여주고 3명 이상이 좋다 하면 올린다. 글 잘 쓰거나 센스가 특별히 뛰어난 게 아닌, 평범한 20~30대들이다.”

 - 성장기에 글 잘 쓴다는 소리 좀 들었나.

 “초등학교(서울 전동초교) 6학년 때 논술대회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만화가 지망생이어서 늘 만화 스토리를 생각하다 보니 글재주도 따라오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남자건 여자건 함께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 보통 두세 시간 이상 떠든다.”

 - 어떻게 시를 시작하게 됐나.

 “처음엔 정말 장난이었다. 의미를 두려 하지도 않았다. 리디북스에서 일할 때였는데, 페이스북에 40~50편을 올렸더니 회사 콘텐트 담당자가 ‘전자책으로 내보라’더라. 지난해 추석 직전에 글 15편과 사진 등 20페이지 분량을 업로드했다. 사람들 반응이 막 오고 하니 어느 날 욕심이 생겼다. 메시지도 넣게 됐다. 디자인·마케팅을 다 해본 덕분에 항상 수용자·독자 입장에서 글을 구상한다.”

 - 말장난에 가깝다는 비판도 있다.

 “언어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다. 난 인터넷 언어가 한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글은 구조가 유연해서 인터넷과 잘 어울린다.”

SNS시대 글쓰기, 반응 좋아 시집까지

 - 어떤 점이 공감을 불렀다고 보나.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해주니까. 마침 사람들이 힐링에 지쳐가던 무렵이라 시점이 맞아떨어졌다. 힐링이랍시고 ‘넌 할 수 있어,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 해’라고 강요하는 분위기에 거부감이 많았다. 일종의 강압이고 폭력 아닌가. 나는 꿈과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감정과잉 안 한다. 사소한 얘기를 펀(fun)하게 해주니까 그게 먹히고 퍼져나간 것 같다.”

 - 정치적 색채가 거의 없는데.

 “공감과 공격은 구분돼야 한다. 정치·종교·남녀 대립 같은 주제는 너무 첨예해서 공감 아닌 공격을 담기 쉽다. 내 입장을 구태여 드러내 누군가의 공격 대상이 되기 싫다. 쓰면서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도 싫다. 내가 지키는 원칙이자 가치관, 전략이다.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 그래서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SNS에서도 하지 마라’는 작품도 썼나.

 “그렇다. SNS는 유리방이다. 나의 공간이지만 남들이 다 보는 공간이다. 조심할 필요가 있다.”

 - 요즘 세대라 그런가. 이직이 잦았다.

 “ IT(정보통신) 쪽은 원래 이직이 잦다. 대학(건국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졸업 후 엠게임에서 1년 8개월, 네오엠텔에서 1년 3개월, 그리고 다시 리디북스로 옮겨 1년2개월 가량 일했다. 올해 4월 퇴사해 아직 직장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불안하지만, 반년 정도는 그냥 흐름에 맡기려 한다.”

글=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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