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빌딩의 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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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일 상오 5시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고(1백7m),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삼일로「빌딩」26층에서 불이나, 내부시설 3백20명 전부를 불태우고 자동진화 됐다.
고층건물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요즘 이번 화재는 앞으로도 결코 드물지 않을 고층건물 화재시의 재앙을 역력히 예고해 주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행히 이번에는 빌딩 안에 거의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시간에 화재가 일어났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보간 수 천명의 사람이 들끓고 있을 때 화재가 일어났다면 그 아비규환 하는 혼란상은 상상만 하여도 모골이 송연함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이번 화재 시에는 20여대의 소방차가 긴급 출동했으나, 화재발생 장소(26층)가 너무 높아 (86m)이들은 호스를 들이댈 엄두조차 내소 못했고, 건물내부의 엘리베이터 또한 20층까지 밖에는 가동되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자동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고층용 사닥다리 소방차는 고작 50m용이 단 1대 뿐이라는 것이니, 서울시내에서 만도 그 이상의 높이를 가진 고층「빌딩」수가 80여 동이 된다는 사실과 견주어 생각할 때, 이는 결코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라 할 것이다.
더 우기 이번 삼일로 빌딩은 최신식 자동소화장치를 설치하고, 준공된 지 불과 두 달 밖에 안 되는 건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가 동 건물의 여타부분에 까지 미쳤다는 것은,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서도 그 점검과 관리가 소홀하면 결국 있으나 마나 하다는 교훈을 실감 있게 남겨 주었다할 것이다. 동 건물에는 각층·각방에 자동경보장치가 돼 있었을 뿐 아니라, 실내 온도가 40도C를 넘으면 자동적으로 소화용수의「스프레이」(살수)가 시작되는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으나,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해 이번과 같은 피해를 보게된 것이다.
최근 수년 내 화재발생통계를 보면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의 고층 빌딩 화재가 발생할 빈도와 그 피해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대형화하리라는 것이 확실시되는데, 이 경우 가공할만한 재앙은 비단 당해 고층 빌딩 관계자뿐 만으로는 국한될 수 없음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기억에 아직도 새로운 부산 전신전화국 화재며, 서울 세련상가화재 때 경험했던 공포를 반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 나라 소방태세의 전면적인 재정비와 함께 모든 상설건물 관리자·이용자들의 정신자세에 있어서도 새로운 고층시대다운 전환이 절실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현재 전국에 32개의 소방서가 있으나 정규 소방요원은 불과 9백54명(정원 9백75명)이며, 보유하고 있는 3백44대의 소방군장조차 그 75%는 당장 대체해야 할 고물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화재의 조기발견을 위한 망루조차가 고층 빌딩 의 높이를 못 따라가고 있으며,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고층 빌딩 화재 때에 대비하기 위한 소방기구나 시설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 이런 실정 하에선 이른바「빌딩·붐」이 가공할 만한 화제「붐」과 직결되고 있음을 에누리없이 직시해야 할 것이다.
유류와 전열기기의 사용빈도가 급격히 불어나고 있으며, 서문에는 수 천명의 시민이 밀집해서 활동하기 마련인 고층 빌딩이 초대형 비극의 제조 창이 되지 앉기 위해 평소부터 화재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일단 긴급사태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훈련을 쌓도록 일대국민연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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