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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얼굴…세「이색합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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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1일 발표된 제12회 사법시험엔 남자들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2명의 여자 응시자가 합격되어 앞으로 황윤석 판사 이래의 여자법관이 탄생하게 됐다.
영광의 두 여인은 모두 경기여고와 서울법대를 나온 재원들.
강기원씨(28·서울 종로구 신교동 2의30)는 합격 소식을 듣고『얼떨떨하다』면서도『어서 이 소식을 미국에 가 있는 남편 김학준씨(조선일보 기자)에게 알려야겠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67년 결혼한 동갑인 남편은 정치학을 연구하기 위해 도미중이고 지금은 친정에서 3살 난 딸 은 수양과 함께 살고 있다.
서울은행 전 전무 강대봉씨의 장녀인 강씨는 전남여중의 경기여고를 거쳐 64년 서울법대를 졸업, 지난 2월엔 다시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을 나왔다.
결혼 뒤에도 사법시험 공부를 해 왔다는 강씨는『신혼 초에 남편과 떨어져 시험 공부를 할 때 주위에서 이상스런 눈으로 보던 것이 제일 괴로웠다』며『합격은 했으나 어려운 법조계에서 제대로 일을 해나갈지가 걱정이다』고 조용한 걱정.
안씨와 함께 합격한 황산성양(26·광주시 백운동 511) 도 경기여고와 법대 코스.
강씨의 4년 후배다. 작년 법대를 나온 이후 3번이나 시험을 치렀으나 실패 4번째 합격의 기쁨을 맛보게 됐다.
호남신학교 교수이며 목사인 황성욱씨(60)의 외동딸인 황 양은 실패의 쓰라림을 맛볼 때마다『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니 용기를 내 다시 해보자』고 힘을 북돋워준 아버지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이 법대를 택하고 고시를 치른 것은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변호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합격하기 전에는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는 황 양은 이제『착실한 기독교신자이며 변호사인 신랑감이 있으면 힙을 합해 일해 보겠다』고 수줍게 웃었다.
20년 동안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 공학도가 이번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65년 경기고를 거쳐 금년 봄 서울 공대기계과를 졸업한 채방은군(24·서울 성북구 삼선동 1가 118)은 작년 3윌에 고시공부를 시작, 지난 2월에 처음 응시했고 이번 두 번 째의 도전에서 성공했다.
국민학고 교사였던 아버지를 20여 년 전에 여의고 역시 국민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이성봉씨(51)와 둘이서 외롭게 살고있는 채씨는 생활의 안정을 위해 기계과를 택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대학졸업 후 법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고시에 응한 동기를 말했다.
1년 4개월만에 합격한 비결은『단 한「페이지」도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정독주의로 책을 읽었고 모르는 점은 법대친구들에게 물어서 이해했다』면서 앞으로의 계획은 사법 대학원을 마친 후에 결정하겠다고 신중을 기하고『합격의 영광을 모두 어머니에게 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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