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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출산 후 아이에게 올인하는 아내 탓에 속상하다는 33세 직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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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3세 직장인입니다. 고달프지만 남편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아내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올해는 아들까지 태어나 더 행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출산 후 아내가 변했습니다. 오직 아이만 생각하느라 저는 뒷전입니다. 아이 이유식엔 한우 넣으면서 저는 수입육 줍니다. 백화점 가서도 아이 옷만 사옵니다. 돈 아낀다며 제 옷은 절대 안 사고요. 섭섭하다 말했더니, 오히려 우리 아이에게 잘하는 건데 왜 질투를 하느냐고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군요. 이대로 가면 부부 사이가 멀어질까 걱정입니다. 제발 제 아내 좀 말려주세요.

A 나만 사랑하던 아내가 아이를 낳은 후 모성애의 작동으로 달라집니다. 아이에게 에너지를 쏟는 만큼 남편에게는 소홀합니다. 그런 아내에게 섭섭한 건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질투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게 유혹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으려고 심장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유혹합니다. 질투는 유혹이 실패했을 때 나오는 감정입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너는 다른 이를 사랑하느냐, 이게 바로 질투입니다.

 자녀만 위하는 아내 앞에서 질투를 경험한 남편들의 사연이 가득합니다. 아이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먹으려던 찰나, 엄마는 유통 기한이 하루 지난 걸 확인하고는 "먹으면 안 돼, 아빠 갖다 줘”라고 말합니다. 제아무리 마음 좋은 남편이라도 아내의 합법적 ‘외도’에 눈물이 핑 돕니다.

 하지만 모성애는 무죄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를 돌보는 모성은 종교적 고결함마저 느끼게 하는 신비로운 감성입니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입니다. 욕망은 이기적인 데다 끊임없이 더 확장하려는 특성이 있기에 함께 더불어 사는 이 사회에서 문제를 만듭니다. 그래서 사회 시스템은 다수가 효율적으로 욕망을 충족할 수 있도록 여러 통제장치를 작동합니다. 그러나 모성애를 통제하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성애는 욕망과 마찬가지로 매우 본질적이고 강한 충동이지만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이고 희생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 몸부림치는 남녀, 그래서 평생 같이 있으려고 결혼합니다. 그리고 그 결실로 자녀를 얻습니다. 일대일 남녀관계에서 자녀가 가운데를 차지하는 엄마-자녀-아빠 구도로 바뀌는 겁니다. 당연히 남녀 간 사랑은 줄고 엄마·아빠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게 됩니다. 그러다 자녀들이 독립하면 다시 남녀로 만나는데, 상당수 부부가 이걸 어색해합니다. 100세 시대이기에 60세에 자녀가 독립한다 해도 남녀로서 40년을 같이 더 살아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황혼 이혼이 느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모성애는 무죄라지만 사실 과도한 모성애는 꼭 황혼 이혼까지 가지 않더라도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내 이름 석 자를 지우고 오직 엄마라는 타이틀로 열심히 자녀를 키워 대학 보내고 결혼시켜 멋지게 독립을 시켜도 마음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오기 일쑤입니다. 자녀를 위해 내 감성을 더 많이 투자한 희생적인 엄마에게 허전함은 더 크게 찾아옵니다. 내리사랑은 이렇게 워낙 밑지는 장사입니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모성애는 아름다운 것이고 자녀가 잘 성장하면 내 인생은 충분히 보상받아 행복할 거란 통념은 반쪽짜리 진실입니다. 어떤 효자도 엄마의 희생을 보상할 수는 없습니다. 엄마의 희생은 보상이 불가능한 만큼 큰 것이니까요. 모성애란 원래 이렇게 손해 보는 장사인데, 그걸 모르고 있다가 허무와 분노, 그리고 슬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죠.

 고부갈등도 많은 경우 과도한 모성애가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녀가 떠나면 내 정체성의 밀도가 옅어집니다. 지금껏 엄마가 아닌 독립된 주체로서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자괴감이 들면서 인생의 실패자란 생각까지 듭니다.

 사람은 이럴 때 문제 원인을 일차적으로 외부에서 찾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실패자란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무 아이만 바라봐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라는 자각은 자신을 더 실패자로 여기게 하기 때문에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상한 며느리가 들어온 탓으로 이유를 돌리는 겁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탓하는 시어머니의 더 깊은 무의식엔 아마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이 있을 겁니다. ‘너라도 탓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너무나 허무해졌을 것’이라면서요.

 과도한 모성애의 합병증으로 클리닉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잔소리가 늘어 오히려 자녀와 멀어졌다거나, 자녀에게만 신경 쓰다 보니 부부 사이가 아이 키우는 동호회처럼 됐다거나, 아니면 아들이 결혼 후 며느리 편만 들다 급기야 어머니에게 이별 통보를 한 경우 등 다양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모성애에 올인하지 말고 최소 50%는 자기 이름 석 자로 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엄마는 가장 고귀한 직업입니다. 그러나 균형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제안을 한다면, 에너지의 3분의 1만 자녀에게 쓰라고 권하겠습니다. 에너지를 줄이면 혹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할 겁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아이를 열 명씩 키우던 시절에도 아이들은 잘 자랐습니다. 엄마가 자기의 모든 걸 다 버릴 정도로 신경을 써야만 아이가 성장할 수 있다면 인류는 이미 사라졌을 겁니다. 그 다음 3분의 1은 남편에게 사용하세요. 아이 출산 후에도 남녀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렵겠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부부만의 시간을 갖도록 하세요.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고요. 이때 지켜야 할 건 두 사람 이야기만 하고 아이 얘기는 안 하는 겁니다. 그래야 60세 이후 다시 40년을 남녀로 살아야 할 때 어색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3분의 1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세요. 육아서적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으세요. 취미 생활도 중요합니다. 직업이 있다면 그 일에 몰입하시고요.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는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엄마를 더 멋지게 여겨 관계가 오히려 좋아집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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