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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호주에서 제11신> 양떼의 요람 인조초원|김찬삼 여행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차창으로 보이는 서부지대의 목장풍경은 자연적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인공적인 것이다. 목장이란 황무지를 일구어 목초의 종자를 뿌려 만든 것이며 양 또한 본디 외국에서 수입하여 양식했을 뿐 아니라 먼데서 「파이프」로 이 건조지대까지 물을 끌어와서 목초와 양을 기르기 때문이다. 개척자들은 이같이 거대한 제2의 자연을 만든 것이다. 간혹 큰 우물을 파서 화란식 풍차로 지하수를 길어 올려서 양들의 음료수로 쓰기도 하고 목초에 주기도 하지만 이 「캘구리」란 곳은 거의 송수관을 통해서 먼 곳에서 보내오는 물로 목초를 기름지게 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목장이란 하늘에서 떨어진 목장이 아니라 순전히 개척자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양떼들은 무척 행복스러워 보인다. 이들은 털만 인간에게 제공하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아무런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어쩌다 양들의 백골이 들에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아마도 늙어죽은 것이리라. 지금 이 나라에는 1억 6천 5백만 마리의 양들이 살고있으니 이들이 모두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면 온 세계에 우렁차게 퍼질 것이다.
같은 「콤팩트」차안에 탄 거인은 잠이 부족한지 드르렁 드르렁 낮잠을 자건만 나는 눈을 부릅뜨고 차창으로 쉴새없이 밖을 내다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나는 「인간촬영기」로서 되도록 많이 보아 망막에 세계상을 붙들어 두었다가, 귀국하면 영사기가 되어 내 뇌리에 감긴 수억 아니 수조「피트」의 「필름」을 영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느새 나는 노예적인 「여행하는 기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시골 소도시인 「캘구리」까지는 급수 지대지만 이곳을 떠나니 이 대륙 본연의 불모지대에 들어선다. 「레일」은 일직선으로 뻗쳐 있으며 마을이라고는 보이지 않아 원시시대의 풍토를 연상하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이곳을 횡단하는 철도는 세계에서 가장 긴 직선구간으로서 한 구간이 3백 20㎞나 된다. 어쩌다 역이 나타나는데 이 역에 딸린 마을이란 없으며 역원 사택 몇 채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역들이란 바다의 등대지기와도 같은 구실을 하는 셈이다. 특히 캄캄한 밤, 한없이 펼쳐진 평원에 오직 한군데 역에만 불이 켜 있는 것은 옛이야기에 나오는 산골의 오막살이집의 등잔불을 연상시킨다.
역의 이름들은 철도 공사 때에 관련이 깊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그 거인이 이야기해 주었다. 이 근방은 아직도 미개척지가 많다. 질이 좋은 초원이 있어서 앞으로 얼마든지 양이며 소를 늘릴 수 있다니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남호주와의 국경선에 가까운 「포레스트」란 역의 부근에는 잡초를 뽑고 적갈색의 흙을 다져만든 곳에 기류통과 소형비행기들이 보였다. 여기가 바로 「플라잉·닥터」(하늘을 날아오는 의사)의 한 기지였다. 이것을 경영하는 것은 「로열·플라잉·닥터·서비스」란 단체인데, 기독교 장로교파의 목사가 전도하던 중 내륙 깊숙이 사는 사람들이 의사가 없어서 매우 곤란해하는 것을 보고 1928년에 만든 것이다.
지금은 이 대륙에 14개의 기지와 15∼16대의 비행기를 갖추고 있으며 기지마다 의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내륙 깊숙이 들어가 있는 목장이나 또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원주민 수용소에는 무선전화가 있어서 기지에 있는 의사와 연락하며, 기지에서는 곧 비행기를 타고 어디든지 날아가는 것이다. 이 「플라잉·닥터」는 물론 영리가 아니라 순전히 봉사를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성의였던 「슈바이처」박사에 못지 않은 위대한 박애정신의 표현이다. 이것은 국가시책이전에 이미 국민 스스로가 이룩한 사회보장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이 「플라잉·닥터」의 대상인 목장과 원주민 수용소의 수는 약 4천에 가까우며 최근 1년동안의 의료통계를 보면 1만 6천명을 진찰하고 1천 5백명을 기지로 날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거리 왕진」이라 할 비행치료를 위한 1회 평균 비행거리가 왕복 6백㎞라고 하니 얼마나 대륙적인가를 알 수 있다. 이 「플라잉·닥터」의 진찰과 치료비는 무료인데, 일반유지들의 기부금과 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하며, 기부금 1에 대하여 보조금 1·5의 비율로 정부에서는 예산을 내고있다는 것이다. 하늘을 날아오는 의사들이야 말로「인술의 천사」이며 이 의도가 바로 「히포클라테스」의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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