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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차와 동정이 넘치는 야간열차|김찬삼 여행기<호주에서 제10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대륙횡단의 종착지인 「퍼드」시까지 관광 「버스」로 함께 온 우리 일행은 시내 구경을 하고는 곧 헤어지기로 했다. 그새 두터운 우정으로 맺어졌던 때문인지 모두들 서운해했다. 어떤 여성은 『나는 이렇듯 흐뭇한 단체생활은 처음 해보았어요. 정말 멋있어요. 연옥이거나 지옥이거나 우리들이 함께만 있다면 「유토피아」가 될텐데 이렇게 헤어지니 정말 서운해요. 우리 이담에 어떻게 해서라도 다시 만나십시다. 미래가 아니라 현세에서 말예요』라는 뜻깊은 말을 했다.
나는 새삼스럽게 저 「니체」의 너무나도 유명한 말인 「먼 자에의 사랑」을 느꼈다. 초인을 꿈꾸는 이 철인은 미래사람에 대한 사랑을 던졌듯이 우리일행들은 먼 나라 사람에 대한 교류에서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의 기쁨」을 서로 느꼈다. 분명 「사랑의 불꽃」이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 사람일수록 강렬하지 않을까. 마치 천문학적인 머나먼 거리로 떨어져 있는 별들이 무한한 신비를 안고 유성이 되어 사랑하는 별에 달려 들 듯이 이국인끼리의 사랑은 그지없이 아름다운 불꽃을 튀기는 것이었다.
이들과 헤어진 뒤 나는 외토리가 되어 나대로의 여정을 꾸며 보았다. 이 대륙의 서쪽인 서호주에서 남호주를 거쳐 동쪽으로 가는 「코스」로서 대사막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래서 밤차를 타기 위하여 10리쯤 떨어진 교외에 있는 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순전히 「택시」값이 아쉬워서인데 공교롭게도 비바람이 후려갈겨 옷이 온통 젖어 오들오들 떨렸다. 이 밤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몹시도 쓸쓸했다. 얼마쯤 걸어갔을 때였다. 길 양쪽에는 회미한 가로등에 비쳐 하얀 것들이 많이 보이기에 무엇인가 했더니 백대리석으로 된 묘비며 석관들이었다.
조금 무서운 기분이 없지 않았으나 자세히 보니 바로 이곳이 서부개척자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무서움보다는 도리어 이 묘지들이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비석 앞에 제주라도 한잔 바쳐야 하겠지만, 준비한 것이라고는 없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거친 땅을 도끼와 삽으로 개척하여 오늘의 영화를 누리게 한 이들은 지금 이렇게 고이 잠들고 있는 것이다. 이 묘지가 보통 공동묘지라면 비바람이 치는 밤이어서 무섭겠지만, 그런 생각보다는 이들의 넋과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는 것은 이상했다. 죽은 자와 산자의 차원이 다르기에 대화를 나눌 재간이 없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이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재촉했다.
역에 이르니 기차는 막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이 기차는 1, 2등 뿐으로 미국의 차량을 조립한 것이라는데 복도는 가운데 나있고 양쪽으로 간을 막아서 두사람씩 들어가게 만든 「콤팩트」식이다.
낮에는「살롱」이 되고 밤에는 아래 위 두개의 침대가 된다. 그리고 「라디오」가 있고 각 「콤팩트」에서 조종하게 된 난방장치가 갖추어져 있으며 세수대에서는 찬물이 나오는 호화스러운 열차다.
연인들과 부부의 여행에는 둘도 없는 보금자리일 것이다. 그런데 나와 함께 들어가게 된 사람은 여인이 아닌 남자인데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타이탄」(거인) 을 상상할 만큼 굉장히 큰 젊은이였다. 그는 어찌나 마음씨가 좋은지 자기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으며 먹을 것을 자꾸만 권해왔다. 밤도 깊고 하여 위의 침대에 올라가 자려고 했더니 나를 애인 다루듯 냉큼 안아 들더니 침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동성연애 아닌 동성결혼의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영국적인 「애티켓」을 지닌 듯 겨우 차 한잔 갖다주면서 새벽녘에 「콤펙트」의 문을 두들겨 단잠을 깨웠다. 차와 동정이 넘친다. 밤사이에 비가 멎었는지 동녘 하늘은 훤히 밝아오는데 철로를 따라 길가에는 거대한 「파이프」가 뻗쳐있다. 이것은「퍼드」시 근처의 「댐」에서 「캘구리」의 광산이며 도시며 목장들에 보내는 66km의 송수관이다. 4월에서 11월에 이르는 건조기에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이렇게 먼데까지 물을 보내어 목장의 목초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양의 수는 물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만큼 이곳에는 물이 생명이다.
그런데 이 송수관은 1903년에 완성한 것으로서 야릇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시민들에게 물을 보내기로 했는데, 예정날짜보다 하루 늦게 송수가 되어 이것을 다룬 기사는 가혹한 조롱을 받았으며, 그는 이것 때문에 자살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더라도 이 송수관의 공사가 얼마나 크고 관심거리였던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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