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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온 몸 혈관 공격하는 '소리없는 살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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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스테롤은 심장과 다리 등 전신 혈관에 쌓이다 어느순간 혈관을 완전히 막는다. 흡연·음주량이 많은 사람은 수치가 정상이라도 주의 한다. [김현진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2시, 고대안암병원 심혈관센터로 50대 남성이 의식을 잃은 채 실려 왔다.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증. 심장으로 들어가는 혈관에 0.3㎝가량 되는 콜레스테롤 덩어리가 혈류를 막고 있었다. 세포가 죽어가면서 심장이 멈추기 직전. 의료진은 급히 허벅지 혈관을 통해 가느다란 인공 박동기를 심장까지 밀어넣었다. 동시에 실처럼 얇은 카테터를 심장 혈관에 넣어 문제가 되는 덩어리를 빼냈다. 고대안암병원 심혈관센터 임도선 교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관리를 받던 환자였는데 갑자기 혈전 덩어리가 터져 염증 물질이 혈관을 막았다. 서둘러 병원으로 후송돼 오지 않았다면 거리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아리 저림 무시하다 하지 절단할 수도

9월 4일은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정한 콜레스테롤의 날. 콜레스테롤이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원래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HDL(고밀도콜레스테롤)과 LDL(저밀도콜레스테롤)로 나뉘는데, LDL은 몸 속 지방을 혈관을 따라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HDL은 혈관 내 여분의 콜레스테롤을 간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세포와 세포막을 구성하고 호르몬 합성과 뇌 발달, 신체 성장 등에 쓰이는 필수 영양소다.

그런데 동물성 식품 섭취가 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동물성식품은 나쁜 콜레스테롤인 저밀도콜레스테롤의 비율을 증가시킨다. 임도선 교수는 “저밀도콜레스테롤이 기준치보다 많아지면 콜레스테롤이 지방을 이동시키지 못하고 혈관 중간 중간에 내려놓는다. 혈류의 흐름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고혈압·당뇨병·스트레스 등으로 혈관벽이 약해진 사람은 더 위험하다. 수도꼭지로 말하면 수도관 요철이 생긴 부위에 때가 더 잘 쌓이는 것과 같다. 이 콜레스테롤은 서서히 커지면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가 어느 순간 ‘탁’ 터진다. 이때 염증물질이 흘러나와 혈관을 완전히 막는다. 혈액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임 교수는 “심장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혈관이 막히면 30초 내에 사망하고, 갈라져 나오는 작은 혈관이 막히면 몇 시간까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매년 7만여 명의 환자가 이런 급성심근경색증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고 있다.

콜레스테롤은 심장만 위협하는 게 아니다. 뇌 혈관도 위협한다. 특히 운동신경과 인지능력을 담당하는 부위가 잘 막힌다. 이곳이 손상되면 반대쪽을 관할하는 손·발의 반사신경이 끊어져 반신불수가 된다. 임 교수는 “혈전을 녹여 응급상황을 넘겨도 직접 파괴된 뇌세포는 원상태로의 회복이 어렵다. 운동 마비는 물론 지각·언어·보행 장애가 남는다”고 말했다.

혈관 밀집된 신장도 콜레스테롤 먹잇감

다음은 신장이다. 임 교수는 “신장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혈관이 밀집돼 있다. 콜레스테롤이 침착되면 노폐물이 소변으로 배설되지 않고 신장에 쌓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신부전증이 생겨 구토·메스꺼움·피로감이 심해지고, 급기야 혼수상태에 이른다.

종아리가 자주 저린 사람도 콜레스테롤 과다를 의심해야 한다. 임 교수는 “하지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이 막히면 종아리 통증이 발생하고 심한 피로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발가락이나 다리 괴사로 이어져 하지를 절단해야 한다. 특히 척추질환 때문에 다리가 저린 경우와 혼동할 때가 많다. 척추가 신경을 눌러 다리가 저릴 수 있는데, 재활치료를 하면서 서서히 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혈관 막힘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근육통이나 하지정맥류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와 상지의 맥박과 혈압을 함께 측정해 비교하는 검사, 혈관 조영검사를 하면 원인을 알 수 있다.

기름진 음식 탓 20~30대도 고지혈증 환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서울성모병원 심장내과 노태호 교수는 “콜레스테롤이 많은 대표적인 식품이 기름기 많은 육류·계란노른자·동물의 내장류다. 버터·코코넛기름·비스킷·도넛·케이크 등도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고 말했다. 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것도 문제다. 식이섬유가 부족해 혈관을 깨끗이 하는 역할을 못한다. 운동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다. 노 교수는 “하루 30분 이상 유산소운동(걷기·달리기 등)을 하면 혈관을 탄력있게 만들어 콜레스테롤이 침착되는 것을 줄인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실은 태아기 때부터 콜레스테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해 나이가 들수록 늘어난다. 그런데 요즘 기름진 음식을 워낙 많이 먹어 20~30대도 50~60대 수준의 콜레스테롤을 가진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심평원 자료에서도 20대는 3만 명, 30대에선 8만 명의 환자가 고지혈증 치료를 받고 있다.

유전적인 원인도 있다. 뚱뚱하지도 않고, 동물성 식품을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이다. 임 교수는 “선천적으로 콜레스테롤 대사가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부모의 유전적 소인을 물려받은 경우다. 이런 사람은 아킬레스건이나 손가락 관절에 콜레스테롤이 침착돼 황색으로 보이는 특징이 있다. 30세 이하 연령층도 심근경색증이나 뇌졸중이 발병하는 요주의 대상이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해서는 식생활 습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약물 복용도 중요하다. 노태호 교수는 “약물을 복용하면 보통 몇 달 내 수치가 거의 정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대부분 수 주일 내에 원래대로 돌아간다”며 “약을 임의로 끊고 어설픈 식사요법을 하다 혈관이 막혀 응급실로 실려오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처음 6개월간의 식사요법에 실패한 사람은 평생 약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배지영 기자
사진=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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