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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홍 증인 신청 기각 … 속타는 S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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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일 저녁 서울 서린동 SK그룹 사옥. 휴일이었지만 일부 당직 근무자가 사무실에 앉아 전화기를 돌리고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밤늦게까지 최태원 SK㈜ 회장 횡령 사건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 회사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 회장 횡령 사건 항소심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가 김원홍(52·전 SK해운 고문)씨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지난 7월 31일 김씨가 대만에서 체포될 때만 해도 SK 측은 “진실을 규명할 기회가 생겼다”며 기대를 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체포 한 달이 넘도록 김씨의 국내 송환이 지연되고 있다. SK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 당국으로부터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것뿐이어서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 점은 재판부도 인정하고 있는 사안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는 지난달 29일 열린 공판에서 “김씨가 이번 사건의 결정적이고 중요한 지위에 있는 인물”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증언을 대신할 수 있는 녹취록이 증거로 채택돼 있고 최 회장의 구속 만기일인 9월 30일 전에는 선고를 해야 한다”며 “김씨를 불러서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다”며 증인 신청을 기각한 상태다.

 이에 따라 SK는 2003년에 이어 ‘총수 부재’라는 악몽이 장기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업에 총수 부재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최 회장은 2003년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돼 7개월간 수감 생활을 한 바 있다. 올 1월 31일 구속된 그는 현재 수감 7개월을 넘긴 상태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최태원 회장이 펀드를 조성하기 전부터 김씨가 개입하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공소장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 되면 핵심 인물에 대한 증인 신문이 빠진 ‘반쪽 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공소 사실 구조가 달라진 만큼 충분히 검토하고 답변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최재원 부회장 측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이달 3일에 추가로 재판을 열기로 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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