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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악하고 긴 대화…17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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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7일로 제17주년을 맞는 한국의 휴전은 미군 감축론으로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드는 지도 모르겠다.
끈덕지게 제기되는 주한 미군 일부 철수설은 한국 휴전 17년간에 걸쳐 가장 의미 깊은 변화라고 관측되고 있다.
『미군 감축은 휴전협정 조인이래 한국의 주요 변화임에 틀림없다』고 군사정전위 중립국 감시위원단 「스위스」대표 「클라우데· 반·무이멘」 소장은 얼마 전 말했다.
「무이덴」소장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주한 미군 감축은 한국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 미국이 가질 더 가능한 변화의 예고일지도 모르겠으나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 수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덧 붙였다.『그러나 주한 미군 일부 철수로 휴전하의 현상상태에 어떤 위협이 제기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50년 때와는 달리 미국은 결코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군도 50년의 군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휴전은 세계사상 가장 긴 것이 되었다.
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괴사이에 협정이 체결된 후 지금까지 판문점의 군사정전위원회는 모두 3백 3차의 본회의와 3백 79차의 비서장 회의를 열어 대화를 이어왔다.
판문점 회의는 56년 초까지 협정발효에 따른 행정적 처리와 기능강화에 대한 합의를 그런 대로 양측이 성취할 수 있었던 초기를 빼놓고는 그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어왔다.
북괴는 협정을 근본적으로 위반하면서 군비 증강과 전략 준비에 광분했으며 이 같은 북괴의 태도는「유엔」군 측으로 하여금 전략물자 교체를 규정, 한반도에서의 군사력의 현상유지를 목적으로 한 협정 13항 ㄹ목을 제75차 본회의(57년 6월 21일)에서 일방적으로 폐기 선언하게 만들었다.
협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 실효룰 잃게됨으로써 군사정전위원회는 세계에서 가장 험악하고 제일 협상이 안 되는 협상기구가 되었다.
그러나 「무이덴」 「스위스」대표나 군사정전위 「유엔」측 대표를 이루는 미군 장교들은 판문점이 악화일로를 치닫고있는 한국에서 대화를 통한 안전판 구실을 하고있다고 말하고있다.
판문점은 휴전의 긴장상태 아래 일어나는 많은 긴급사태로 빚어지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처리하는데 공헌했다. KNA기 납북사건을 비롯하여 최근의 「푸에블로」호 납치, EC-121 정찰기 피추사건 등을 처리하는 통로역할을 했다.
이러한 사건에서 입증되었듯이 판문점은 세계의 무뢰한 북괴와 미국의 유일한 외교 「채늘」을 이루었고 미국의 대한정책이 투영되는 곳이기도 했다.
지난 17년간의 모든 통계가 말해주고 있지만 근년의 미국은 군사정전위에 관한 한 소극적이거나, 아니면 매우 신중한 대 북괴 태도를 보이는 것은 특기할만하다.
지난 3백 3차의 본회의 가운데 「유엔」 측이 요청해서 열린 회의는 89차밖에 안 되는 데 나머지 2백 14차의 회의를 북괴가 요구했다.
70년의 반을 훨씬 넘는 올해 공산 측이 6차례의 본회의를 요청한 반면 「유엔」군 측은 한번도 요구하지 않았다.
점점 두드러져 가는 이 같은 태도는 비록 회의에서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만부득이 꼭 필요한 경우를 빼놓고는 공산측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말라는 미국당국의 계획된 조치의 결과라고 보이고 있다.
주한미군 일부 감축을 하나의 독립된 군사조치라고만 생각할 것인가? 군사정전위 한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한 장성은 미국의 감군 조치는 단순한 경비절약이라는 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외정책-특히 대한정책-의 앞으로의 방향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모든 전략이 정치 외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미국을 안다면 굳이 감군을 밀고 나가겠다는 미국의 동기를 철저히 통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닉슨·독트린」이 핵시대의 미국 대외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면 휴전 17년만에 한국은 해가 지날수록 더 많은 변화에부딪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미군감축으로 새로운 양상을 띄게된 한국 휴전은 협상기구로서의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기능에 대해 고찰을 필요로 하게 할는지 모른다.
휴전은 현상유지를 필요로 한 미국이 한국에 강요했던 것이며, 새로운 미국의 군사적 정책적 필요로 한국문제의 접근을 미국이 시도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성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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