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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문·이과 구분,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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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교육부가 27일 50여 년간 유지돼온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2017학년도 수능에서 문·이과 현행 유지 외에도 문·이과 과목의 교차 선택을 허용하거나 아예 문·이과 구분을 없애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문·이과 구분은 일본·대만에만 있는 제도로 통합형·융합형 인재 양성의 걸림돌”이란 의견과 “학습 부담이 늘어 사교육을 부채질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일제의 잔재 … 어렵더라도 구분 허물어야

서 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교육사(敎育史) 책을 펴자. 이 질곡의 뿌리를 거슬러 오르면 일제강점기가 펼쳐진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제국대학은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칼을 들고 있었다. 백성이 국가융성의 도구이던 메이지 시대의 고안이었다. 그들은 교육공급자의 편의대로 학생들을 나누었다. 문과와 이과. 그리고 이를 식민지에 이식했다. 1924년 경성제국대학의 첫 입시에서 문과 90명, 이과 80명을 선발한 것이다. 조선인이 각각 29명, 16명 포함돼 있었다.

 광복이 되고 미국식 교육제도가 겹쳐졌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근대사의 격랑이 새겨진 화석이 되었다. 기형적이되 살아있는 화석. 세상으로부터 돌아앉아 웅크리고 있는 비극적 화석.

 너는 누구고 어디로 가느냐. 국민이 도구이던 식민시대의 유물은 어린 고등학생들에게 참으로 버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학생들을 둘로 나누고 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창살을 쳐 놓는다. 문과와 이과. 이제 교육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학문과 직업을 용감하게 청군과 백군으로 뭉텅 썰어놓는 폭력이 되었다.

 학기 초 교양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묻는다. 왜 그 전공을 선택했느냐. 대답은 가슴에서 분노를 끓게 한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과를 선택해 버려서 그냥 공대에 진학했어요. 이과 적성이었는데 문과로 잘못 선택해서 성적에 맞춰 지원했어요.

 이들은 아직 인생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부르는 이름이 학생이다. 자신을 확신하고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고등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도대체 우리는 왜 이들의 인생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세우는가. 우리는 왜 이들의 미래에서 세상의 절반을 잘라내는가. 이들의 행복추구권은 왜 무참하게 유린돼야 하는가.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국가발전의 도구가 아니고 국가구성과 권력발현의 주체다. 그래서 교육은 국민들이 경쟁적 이기심을 발휘해 건전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수단이다.

 인생의 목적지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찾아나가야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순간의 선택을 강요하고 그 책임을 평생 지고 가라는 교육제도는 형벌이다.

 학문 융·복합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상은 교수들의 전공 구분에 의해 재단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융·복합을 내걸어도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문·이과로 나눈 상처는 통합되지 않는다. 가장 유효한 융·복합은 애초에 나누지 않는 것이다.

 교육의 근간은 사회의 방향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다. 교육과정의 편의는 일제강점기의 논리였다. 경쟁 격화와 사교육 증가가 우려되면 우리는 여전히 그 시대의 동굴에 남아있어야 한다. 방향이 옳다지만 길이 거칠어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 세기에도 일제가 파 놓은 우물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것이다. 호주제도·좌측통행제도를 폐지했다. 시행에 따른 우려를 불식하고 금융거래실명제도, 쓰레기 종량제도 실시했다. 옳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가 없이 미래가 있느냐고 이웃나라에 묻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전 세기에 던져놓은 청사진을 우리는 청산했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야만의 제도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옥죄려는가. 아이들을 번뇌와 후회의 동굴에 밀어넣는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가.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통합이 대세라도 준비없이 도입해선 곤란

이성권
서울진학지도
협의회 회장(서울 대진고 교사)

문과와 이과 통합을 제안한 대입 수능 개편안은 시험뿐 아니라 시험과 연계된 고교 교육과정을 바꾸는 변화까지 담고 있다. 교육과정이란 학교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국가가 정한 청사진이며, 모든 학교는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학생을 가르친다. 수능 역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한다. 교육과정과 수능 가운데 선후 관계를 따진다면 고교에서 교육과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뒤 이를 바탕으로 수능이 연착륙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 개편안 중 문·이과를 통합하는 수능 체제를 제안한 방안(3안)은 교육과정 개편 논의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 교사로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융합적 인재를 기르기 위해 문·이과 통합 교육을 하는 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교육과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수능의 체제 변화가 차분히 논의되었어야 했다. 아무리 정책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시험 체제를 바꾸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다. 현재 교육과정은 선택형 수능에 맞춰져 있다. 학생들은 고교 1학년부터 모든 과목을 선택해 배우도록 돼 있다. 문·이과 통합 방안이 채택된다면 모든 학생이 과학과 사회 과목을 배워야 한다. 학교는 이를 위해 각 학년에서 관련 과목을 어떻게 선택하고 이수해야 할지 정해줘야 한다. 따라서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가능하려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논의 없이 시험 개편만을 얘기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시안이 발표된 지금 많은 사람이 문·이과 통합이 시대적 흐름과 대세라고 주장하나 이런 이유만으로 수능에서 이 방안을 준비 없이 채택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명확한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하루아침에 변경될 수 있는 간단한 체계가 아니다. 교육과정을 바꾸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총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각 과목의 내용은 어떻게 바꿀지 결정해야 한다. 이어 교과서도 제작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대학 입시를 치르는 게 2017학년도 대입인데도 이들이 내년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수능 개편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올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선택형 수능 역시 이미 3년 전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 체제를 갖췄다. 당시 학교가 처한 여건을 무시하고 교육과정 개편이 이뤄진 탓에 결국 선택형 수능은 시행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채 폐기될 처지다. 학교 교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책을 결정한 결과 나타난 탁상공론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문·이과를 통합하는 수능 체제 개편 방안도 과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는 수능시험 시안 중 하나를 채택하기 위해 9월 2일 서울을 시작으로 총 5회의 공청회를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중대 사안을 결정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교육부는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특히 문·이과 통합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늘어날지 모른다는 학부모들의 의견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고 하더라도 시행과정에서 나타날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혜안(慧眼)이 지금 필요하다.

이성권 서울진학지도 협의회 회장(서울 대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