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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도의의 현대적 의미|부모와 자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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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양윤리 근간은 효도>
동양의 효는 오륜 가운데 기본윤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의 기본이라 함은 다른 윤리는 때와 곳을 따라 변경될 수도 있어도 부자관계는 불변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또 효를 중심으로 해서 다른 윤리가 터 닦아져 있다는 점에서도 기본적이라 할 수 있다. 서구윤리사상은 자유평등을 근거로 하여 인간과 인간의 횡적 관계로 발전되었다면. 동양윤리는 부자유친이라는 친애의 윤리로서 인간과 인간의 종적인 관계를 규제하였던 것이다. 효가 부자유친의 윤리이던 것이 점차로 형식적인 의례로 떨어지게 되어 마침내는 부자관계는 폭군적인 지배복종의 관계로까지 오인되어 왔다. 물론 동양윤리에도 천륜과 인륜이 있기는 했지만 합리화과정을 통해서 천륜과 인륜이 혼돈을 가지고 왔으며 인륜을 천륜으로 연역하는 과정까지 범하게 된 것이다.
이점은 기독교가 가장 분명하게 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오계중 효가 들어있지 않다. 도리어 효의 관념은 보은사상에다가 함입시켜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종적인 것보다는 횡적인 관계가 부각되게 되었다. 전통적인 효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입신양명을 통해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효의 기본윤리의 준수는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디딤돌이 된다고 믿어왔다. 즉 동양윤리는 그러므로 개인윤리가 아니요, 효를 기본이념으로 한 가족윤리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족윤리를 확대시킨 것이 바로 국가(나라·집)라는 표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가족주의적 형태를 국가에서 찾아보려는 공자의 효의 관념은 분명히 충효를 근본이념으로 삼고 있음이 밝혀진다.

<동서윤리의 ?? 단위>
그러므로 공자의 경우 자식이란 부모의 사유물이 될 수 없고 다만 장성할 때까지 부모가 맡아서 잘 기르고 훈육하여 마침내는 국가나 인류사회에 바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녀를 기르는데 있어서도 이들을 자기의 사유물과 같이 마음대로 억압하거나 억제하려는 태도는 공자의 근본윤리 사상에 어긋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공자에게 있어서는 부모가 효를 자녀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믿었으며 그러므로 이 효는 철두철미하게 교육적인 지반에서 해결될 것으로 믿어온 것이다. 따라서 충효는 동의이어일 뿐 내용에서는 동일하고 단지 규모의 대소의 차이뿐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인 가치관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양자의 관계는 현저한 차이가 있음도 잊어서는 안된다. 동양에서는 가족이 단위가 되고 서구에서는 개인이 단위가 되어있다.

<개인주의 풍조 크게 작용>
이러한 각도에서 본다면 한국은 동양의 전통적인 대가족주의에서 점진적으로 서구적인 개인주의적인 윤리관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한국의 현실을 볼 때 군사부를 일체로 한 충효의 입체적 관계보다는 자유평등이라는 횡적인 관계만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개인주의적인 윤리관이 대두되면서 가족주의적인 윤리는 망각되어 버리는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국민교육헌장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서구의 자유평등주의사상은 희랍적인 개인윤리와 「유대」적인 종교사상과의 결합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의 개인윤리는 엄밀하게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평등자유의 윤리사상은 철두철미하게 종교적인 「패턴」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국민교육헌장에는 종교와 효의 관념이 누락되어 있지 않나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러한 사상을 경애하는 두 글자에서 찾아내 봄직도 하다. 즉 경애는 경천애인을 의미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고 달리는 군사부에 대한 경과 이웃에 대한 인애를 뜻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가치 표준 상실한 현대>
그러나 얼핏보아서는 이러한 윤리의 기초라고 볼 수 있는 효나, 이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종교적인 근거가 제시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기도 쉬운 것이다.
오늘의 우리의 현실사회는 윤리적인 가치표준을 잃어버린 혼란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전통적인 동양윤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밀히 종교적으로 터 닦아진 서구의 개인윤리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윤리적인 행동망령이 뚜렷하게 수립되어 있지 못하다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사상의 도입과 함께 동양적인 가족중심의 윤리는 붕괴의 도정을 걷고 있다. 여기에는 서구의 근대화된 사회제도의 영향과 아울러 여기에 합류해서 들어온 기독교사상의 영향을 잊을 수 없다.

<쇠퇴일로의 가장권위>
물론 서구윤리 특히 기독교윤리도 가정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또 이것을 기본윤리의 출발점으로 삼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부라는 남녀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자식의 관계로 내려오기 때문에 충효의 관념은 우리에 있어서와 같이 뚜렷하게 강조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 현대 서구에 있어서의 부모·자녀의 관계다.
정말의 예를 들면 정말은 조국을 살리는 길이 조국근대화에 있다고 믿었고 이로 인해서 근대화에 장애가 되는 구세대의 인물들 즉 노인들은 가정에서 추방하여 양로원에 집어넣고 말았다. 그리하여 과연 근대화과정이 촉진되어 국가는 발전하였으나 오늘날 예기치 못한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즉 오늘날 정말의 성윤리는 극단으로 문란하지만 부모들이 이를 나무라거나 바로 잡을 권위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오늘의 가장들이 과거에 젊었을 때 자기들의 부모들을 낡았다하여 부모의 교훈이나 지도를 받아들이지 아니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러한 서구적 자유주의적 윤리「패턴」은 오늘의 한국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우리의 고유한 효의 윤리망령으로 교육을 시키지 못했다는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방종엔 부모의 책임 커>
바로 부모된 우리가 저질러 놓은 과오를 자녀들은 그대로 도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들이 잘못하여놓고 자녀들만 못되어 먹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 부모들이 강요한다 치더라도 권위를 상실한 뒤라 반항심밖에는 일어나지 않을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예전 같은 효도는 아니한다 할지라도 자기들 나름의 효도를 한다고 우리부모들은 보고 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행동에 대하여 비관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철저하게 윤리적인 교육을 실시해야 될 단계에 있다고 본다. 아직도 우리는 전통적인 가족중심의 효도사상 속에 젖어 있기 때문에 좀더 교육적으로 효사상을 계발시켜나간다면 건전한 국민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전통윤리에의 복고현상>
오늘의 정황에서는 옛 전통만을 고수할 수도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서구적인 것만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형편에 있다. 개인윤리를 강조해온 서구사회는 물론 근자의 동양각국에서도 앞으로의 새로운 질서확립을 위해서 전통적인 윤리사상을 존중하려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뛸 정도이다. 예컨대 제2차 대전이후의 서구사회, 불란서, 독일, 이태리, 미국 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일본도 이러한 경향이 농후해 지고있다.
우리사회의 이러한 경향은 서구윤리의 토착화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사회가 윤리적인 혼란기를 맞이해서, 전통적인 관습과 전래적인 생활양식을 존중하려는 사실도, 내용적으로는 윤리적 혼란이라는 세계적인 풍조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해결책을 옛 전통에서 찾아내려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서구적인 자유평등의 사상을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적 바탕에다가 토착화할 필요를 새삼 느낀다.

<인격적인 부자유친으로>
우리의 전통사상에 자유평등의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것이 등한시되었거나 왜곡되었을 때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서구의 자유평등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생각된다. 이러한 자유평등사상은 유교적인 전통을 잘못 이해하고 받아 내려온 「카리스마」적 주술적 윤리사조에 일침을 가하는 것도 된다.
서구적 종교적 윤리사상이 동양, 특히 한국의 윤리사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국 전통적인 윤리사상을 새롭게 해 주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등한히 여기던 것들에 대한 강조가 곧 이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부모·자녀관계가 과거와 같이 형식화되어서 부자유친이 아니고, 즉 어떠한 폭군적인 명령복종의 관계와 같은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인격적인 관계를 도로 찾아야만 되기에 가식없는 서구적-종교적 윤리사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격적인 관계에서는 부모나 자녀가 다같이 자기의 잘못을 하느님 앞에서 고백할 줄 알아야만 한다. 여기에서 비로소 부모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도로 찾을 수 있는 법이다. 또 이것이 바로 자녀에 대한 교육적인 방법도 되는 것이다. 부모의 잘못은 말하지 않고, 자식만 나무란다면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에도 도의 우선돼야>
교육적으로 볼 때에는 도의교육이 앞서고 연후에 기술교육이 따라와야 된다는 말이 되겠고, 경제성장에서 본다면 소위 「제2경제」가 선행돼야 하고, 도리어 제1경제라는 것은 여기에 뒤따라와야만 되지 않겠는가!
국민교육의 기본이념을 우리의 전설적인 효의 사상에다가 두고 실시해야만 될 것 같다.
이러한 교육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범국민적인 사회교육이 필요하고, 이는 「매스컴」을 통하는 길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효의 사상을 효과적으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한문폐지를 강행하는 오늘날 우리말로 뚜렷한 개념이 고정되어야만 되겠다. 도의교육에 첫째는 이러한 언어적인 새로 개념확립이 절대로 필요하고 또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다.

<차례>
때=7월6일
곳=본사회의실
(6)허례허식 사회 박종홍
(7)현대의 예절 사회 김동화
(8)부모와 자녀 사회 윤봉영
(9)부부 사회 신태환
(10)사제간
(11)우정
(12)동료간의 우의
(13)협동
(14)시민정신
(15)공중도덕
(16)애국의 논리와 윤리
(17)인류애
(18)노동정신

<대표집필>윤성범

<참석자>
사회 유봉영(조선일보부사장) 오기선(대방동본상신부) 이가원(연세대교수·국문학) 서경수(동국대교수·불교학) 윤성범(감리교신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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