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장막을 넘어 오는 홍수|소련 지하 출판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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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소련에서 「삼·이즈다트」라 불리는 출판물들이 범람, 비판적인 시민의 동태를 표면화하고 있으며 소련의 내부 사정을 아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노어로 「자가출판」「지하출판」의 뜻을 가진 이들 책자는 수백 종에 달할 것으로 그 중 유명한 것은 「크로니클·오브·커런트·이벤츠」(현대 제사건의 기록) 이라는 정기 간행물도 있다.
서방측 사람들은 『비밀리에 인쇄되어 소련의 사회 정치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옳은 추측이 못된다.
다만 인쇄기나 등사판의 개인 소유가 인정되지 않고 따라서 원작을 복사하려면 「타이프라이터」나 「카메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런 책을 내는 열의는 놀랍다고 아니할 수 없다. 지하 출판물의 원고를 썼든지 배포한자는 최고 7년의 중노동형이라는 무서운 규제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 책은 「마이크로필름」으로 우송하거나 여행자를 통해 서방측에 전달된다.
레스토랑·공원·영화관·지하철역 같은데서 『성냥 좀 빌려주겠소』『백조의 호수는 좋아하죠』라는 등등의 암호 말들을 주고받아 슬쩍 교환하는 것이 아주 평범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 출판물이 너무 쏟아져 나오니까 비밀 경찰이 날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의 소리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 진짜라고 하겠다.
원고에는 거의 저자의 「사인」이 있고 주소나 전화번호까지 밝혀놓기도 한다.
『소련 수폭의 아버지』라 칭하는 원자력 과학자 「사하로프」, 작가인 「솔제니친」, 화학자인 「리트비노프」 (전외감의 손자), 『소련은 l984년까지 연명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써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학자 「안드레이·아말리크」, 소수의 「크리미안·타타르」민족의 권리 옹호를 위해 싸우는 「그리고렌코」전 장군들의 이름으로 성명·항의서·소설 등이 발표되고 있다.
반체제 작가 「아나톨리·말첸코」는 교도소에서 석방된 후 책을 썼다. 출판하면 다시 교도소로 되돌아가리라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앞서 친구들이 그 책을 출판하는데 실패하지나 않을까 「말첸코」는 걱정이었다.
자기 작품을 지하 출판물로 돌리는 작가는 모두 언젠가는 서방측에 나가 인쇄되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지하 출판물의 대부분은 서독의 「프랑크푸르트」에 사무소를 둔「포세프」라 불리는 출판사에 도달되어 본격적으로 출판되고 있다.
한편 서방측에서 인쇄돼 소련으로 되돌아가는 작품도 많다.
이러한 책은 수요가 굉장히 많아서 소련의 뛰어난 20세기 작가 「아프마토아」「노보코프」「파스테르나」「솔제니친」등의 작품은 소련 서점에서는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독자들은 비싼 값을 치르면서 역수입, 암시장에서 사기 마련이다. 또한 프로이트·오웰·체이스 등 서구의 유명한 학자·작가들의 책도 거의 모두 그 통로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발표된 정치적 색채가 있는 문서 가운데 특출한 것은 다음 세 작품 일 것이다.
즉「안드레이·시냐프스키」·「안드레이·사하로프」·「안드레이·아말리크」이다.「시냐프스키」의 에세이 『사회주의자의 「리얼리즘」에 대하여』(65년)는 서방측에서 높이 평가돼 있고 사하로프의 『공존에 관한 고찰』(68년) 은 소련 지식층의 선언서 같은 것이다.
아말리크의 『소련은 1984년까지 연명될 수 있을까』(70년) 는 활기 잃은 중산 계급을 파헤쳐 서구에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주목할 작품이다.
지하 출판물의 금후의 활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당국은 번지나 배포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다. 솔제니친은 작가 동맹에서 추방되고 「시냐프스키」·「긴스불크」·「말첸코」등은 교도소 또는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탄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반체제적 지식인은 의견을 발표하기 위해 지하 출판에 기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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