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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인사 시즌의 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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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영욱
논설위원

공기업 인사 시즌이 개막됐다. 진작 했어야 했던 공기업 사장 인선도 미뤘던 정부다. 하지만 이제부터 속도를 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해프닝 세 가지.

 공기업 사장을 노리는 전직 고위관료 A씨는 요즘 줄을 대느라 바쁘다. 한때는 든든한 ‘빽’이 있다고 생각했다. 청와대 고위인사와 지연·학연 등으로 얽혀 있어서다. 그 고위인사가 도와줄 것으로 믿고 있었던 터다. 하지만 그가 얼마 전 갑자기 물러나는 바람에 막막해졌다. 요즘은 관할 부처가 올리는 후보 명단에 들어가려고 애쓴다. “왜 하려느냐”는 우문(愚問)에 “집에서 쉬었더니 답답해서”란 우답(愚答)이 돌아왔다. 경영비전을 물었더니 “맡겨만 주면 잘할 수 있다” “남들도 다 하는데”라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공기업 부사장 자리를 원했던 임원 B씨는 좌절에 싸여 있다. 사장이 바뀌면서 승진도 못하고 한직으로 밀려나서다. 처음엔 여기저기 줄을 댔다. 관할 부처에는 물론 정치인에게도 부탁했다. 신임 사장이 누가 되는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은 뒷전인 채 로비에 매달렸다.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승진 누락이었다. 지금 그는 “3년만 참고 기다리자”고 다짐한다. 사장은 어차피 한 번밖에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3년 뒤 새 사장에게 승부를 걸어볼 참이다.

 공기업 사장 C씨는 기로에 서 있다. 전임 사장이 벌여놓은 사업 때문이다. 해외에 합작공장을 지었지만, 이게 부실 덩어리라서다. 전임 사장은 외국 돌아다니면서 ‘대접’도 잘 받았다. 유망 사업으로 포장된 신사업을 시작했기에 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도 잘 받았다. 하지만 C씨가 취임해 들여다보니 내용이 형편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해외사업에서 철수해 부실로 처리할 것인가. 당장은 적자가 크게 나겠지만 자신은 책임 없다. 전임 사장의 과오로 기록된다. 아니면 돈을 더 투입해 어떻게든 살려낼 것인가. 그러나 경영평가는 잘 나오기 어렵다. 막대한 돈을 부어도 임기 내에 성과를 보긴 틀렸기 때문이다. 한번 더 하면 모를까.

 능력이 없는데도 열심히 쫓아다니는 사람이 사장이 되고, 일은 뒷전인 채 로비하는 사람이 승진한다. 목적을 달성하면 평가 잘 받을 만한 것, ‘대접’받는 일 위주로 사업을 벌인다. 공기업 인사철에 흔히 볼 수 있는 백태들이다. 과거부터 있었던 관행들이다. 개인적으론 더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죽어나는 건 공기업이고, 세금 내는 국민인데도.

 밀양 송배전 파행의 한 원인도 이것이지 싶다. 전력이란 업(業)의 본질은 발전과 송·변전이다. 발전은 자회사에 보냈으니 한전의 가장 중요한 업은 송·변전이다. 한전도 잘 알고 있다. 그동안 숱한 송전탑을 세우고 전력선을 건설했지만 밀양과 같은 참담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다. 그렇다면 왜? 밀양 사람들이 특이해서일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시민단체가 가세해 이념투쟁으로 전락했기 때문일까? 일리 있다. 하지만 업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이 사장으로 앉았던 때문도 있다. 송·변전 사업본부를 없애고 다른 본부의 하급 조직으로 격하했다. 대신 해외사업을 중시했다. 사장이 이런 마인드면 직원들이 영향받는 건 당연하다. 예전 같으면 송전탑이 건설되는 지역주민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면서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하니 하는 얘기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진부한 얘기지만 유능한 사람을 사장에 앉히는 거다. 더불어 일 잘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경영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그래야 단기 성과에 얽매이지 않는다. 장기 투자가 가능하고, “3년만 참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잘나가는 민간기업은 다 이렇게 한다. 탁월한 사람을 승진시키고, 일 잘하면 오랫동안 사장 시킨다. 오너 경영의 가장 큰 장점이다. 공기업도 이래야 한다. 유능한 사장은 연임할 수 있어야 한다. 업의 특성에 따라 사장 임기를 달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과학기술이나 자원 관련 공기업은 3년 임기론 턱도 없다. 5년은 지나야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전제가 있다. 탁월한 사람을 선임해야 한다는 거다. 하긴 정부도 알고 있다. 문제는 얼마나 실천하느냐다. 공기업 사장 인선을 질질 끈 것, 이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김영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