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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아티스트' 4총사, 스마트폰 음질 벽 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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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소리는 아날로그다. 연속적이다. 그러나 그걸 담아내는 전자기기는 디지털이다. 비연속적이다. 0과 1의 분절된 숫자의 조합으로 연속적인 소리를 표현해 내야 한다. 디지털 음향 기기의 진화 과정은 아날로그에 가까운 소리를 재현하는 데 있다.

G2의 소리를 책임진 최순원·나용혁·김영준·원윤찬 연구원(왼쪽부터). [사진 LG전자]▷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소리의 진화가 벌어지고 있는 판이 스마트폰이다. 휴대용 전자기기가 스마트폰 하나로 통합되는 시대다. 화질 경쟁의 극단에서 카메라는 스마트폰으로 흡수됐다. 다음은 소리다. 여태껏 스마트폰이 구현한 최고의 음질은 CD 수준이라는 16비트, 44.1킬로헤르츠(㎑)였다.

 LG전자가 지난달 이 한계를 넘어섰다. ‘사람의 최신작’이라는 G2를 내놓으면서다. 24비트, 192㎑. 비트와 헤르츠의 숫자가 높을수록 좀 더 세밀한 소리의 재현이 가능하다. 음반 제작 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최고의 음질 수준이다. 이전에는 없던 스마트폰의 소리를 내기 위해선 소리 없이 움직였던 개발자들이 있었다.

 나용혁(36) 선임연구원은 소리에 특화된 인재다. 음대를 다니며 작곡을 공부하다가 자신의 진짜 관심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소리 그 자체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당장 인생 궤도를 수정해 유학길에 올랐다.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의 사운드·진동연구소(ISVR)에서 음향학을 전공했다. 이 연구소는 유럽 사운드·진동 연구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내친김에 에든버러 대학에서 음향학 석사까지 마친 후 음향 관련 회사에서 일하다 2008년 LG전자에 합류했다.

 나 선임연구원의 소리에 대한 몰입이 진가를 발휘한 건 지난해 9월이다. 소위 ‘G어폰 대란’ 사건이다. 당시 옵티머스G를 구입하면 ‘쿼드비트’라는 이어폰을 공짜로 줬다. 그런데 이 공짜 이어폰(따로 사면 1만8000원)의 성능이 수십만원대 전문 이어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입소문이 났다. ‘이어폰만 따로 구입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폭주했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예약 주문을 받았는데 3만 건이 넘게 접수됐다. 나 연구원은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바꾸러 대리점에 들렀을 때 직원이 ‘쿼드비트 이어폰이 참 좋다’며 휴대전화가 아니라 이어폰 성능을 강조해 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만든 거’라고 자랑하기도 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G프로와 같이 나오는 ‘쿼드비트2’는 최적의 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방향을 1㎜ 꺾을 때도 수백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쳤다”며 “쿼드비트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 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의 한계를 뛰어넘는 음질을 구현하는 단말기를 만들었으면, 그걸 최적으로 표현해 줄 수단도 필요하다. 게다가 요즘은 벨소리가 그 스마트폰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이 벨소리를 따로 다운받기보다는 원래 설정된 벨소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벨소리만 듣고도 어느 회사 제품인지 구별 가능하다.

 김영준(41) 책임연구원은 인간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타악기 소리, 극한의 무념무상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자연의 소리 등 서른 가지가 넘는 소리를 벨소리 후보로 고려했다. 김 연구원은 “결국 최상의 소리는 인간의 목소리라는 점에 착안해 빈소년합창단의 노래를 벨소리로 만들기로 했다”며 “출시 전부터 ‘벨소리만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없느냐’는 등의 문의가 잇따르는 등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공학을 전공했지만 고양이 관련 노래를 여럿 작곡해 이미 고양이 커뮤니티에서는 꽤 인기 있는 작곡가다. 앞서 ‘문자왔숑’ 같은 벨소리를 개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어린이들을 통제하고 오스트리아 현지와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며 “그래도 빈소년합창단 목소리를 벨소리로 만든 건 우리가 처음이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외 김 연구원과 함께 작업한 원윤찬(29) 연구원은 대학 시절부터 소리를 이용한 미디어 아트 작업을 발표한 ‘사운드 아티스트’다. 최순원(36) 책임연구원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는 한계라고 설정된 16비트를 넘어 24비트 음질을 가능하게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들 개발자의 노력으로 G2가 차별화된 음질을 선보였다”며 “보조금 문제와 계절적 비성수기 요인까지 겹친 힘든 상황에서도 매일 7000대 정도 팔리는 등 선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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