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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의 정위 속에 평균 수준|박희진 <시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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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달의 시를 통독하고 보니 필자로선 다음의 작품들이 읽을만하였다.
신석정씨의 『입춘·외』(현대 시학), 장만영씨의 『새벽이었다』, 한성기씨의 『기도』, 정중수씨의 『유년의 바다』(이상 월간 문학), 김상옥씨의『선한 마법』, 장수철씨의 『눈동자』, 김규동씨의 『권태』 (이상·현대 문학), 박남수씨의 『호루루기의 장난』, 박성룡씨의『다시 여름을 살며』(이상·월간 중앙).
신인 정중수씨의 경우를 제외하면 중견에서 노대가 급에 이르는 실력파라 다 그만그만한 역량을 보인 작품들임엔 틀림없겠다. 말하자면 제각기 그 역량이 정립된 시인들이 자기의 평균 수준엔 달해 있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 작품에 일일이 독자를 위한 주석을 붙인대도 나쁠 것 없겠지만 특별히 난해한 작품은 없는데 다 제한된 지면이 허락치도 않겠기에 그중 4편에만 사족을 달아 불까 한다.

<신석정의 입춘>
신석정씨는 60대의 노 시인답지 않게 구김살 없는 정신의 유연성을 과시하고 있다. 나이40이면 이미 동맥 경화증에 걸리거나 빈혈에 허덕이는 시단 관례에 비추어 보아 희한한 일이다.
함께 발표된 5편 중에는 『입춘』과 『오동도엘 가서』『호조일격』이 성공한 편이고, 다른 2편은 많이 불투명하고 생경한 것이 실패작이라 본다. 전기 3편에 공통되어 있는 요소를 든다면 우선 그 젊음이다.
물론 20대의 젊음이 아니라 늙어도 늙지 않는 젊음을 의미한다. 원래 시인이란 늘 새롭고자 원하는 생명의 소유자인 것이다. 몸은 늙더라도 그 정신이나 감수성은 늘 발랄하고 섬세하며 나긋나긋한 처음의 유연성을 지니기가 소원이다. 거울이 흐려지면 제구실을 못하듯이 이런 시인의 지향이 흐려지면 그는 필경 녹슬고 말 것이다.
시인이 저마다 소중하게 갈고 닦아야할 심성의 거울- 거기에 무엇이 비치느냐에 따라 그의 주제는 결정되게 마련이다. 신석정씨의 거울에 비친 것은 시대나 사회의 어지러운 모습은 아닌 게 분명하고 일상 주변의 자연과 그에 대한 시인의 몸놀림과 마음가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노 시인의 생리적 감응 (입춘)에서 교환 (오동도엘 가서), 동화에의 희구 (호조일격) 등이 아주 알뜰히 감칠 맛있게 그려져 있다.

<박남수의 호루라기>
다음엔 박남수씨의 『호루라기의 장난』을 살펴보자. 얼마 전 서울에서 개최된 바 있는 국제 펜 대회 의제 해학의 의미를 되씹게 될 것이다.
호루라기를 권력의 상징으로 본 것부터 이 시에서는 유효 적절한 착안이라 할만 하다. 일견 범용하고 진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이러한 착안이 이 시를 일종 해학 시로서 읽히게 만든 첫 계기로 되어있는 까닭이다. 우리네 사회에선 아무리 거대한 권력 구조라도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될 터이니) 호루라기 같은 거라, 그냥 가볍게 무시할 수도 있을 것 같으면서 무시하면 위험한 것.
그 호루라기의 소리가 불리기에 조건 반사처럼 시인의 몸은 굳어지고 말았지만 뒤돌아 본 즉 호루라기의 주인은 아뿔싸, 예닐곱 살의 동심이었으니 부득이 실소를 자아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게 속은 일이 차라리 통쾌하였다는 작자의 고백에서 독자는 그의 무구한 시심을 감독하게 된다.
마지막 2행이 이 시에 시로서의 묘를 얻게 해주고 있다.

<박성룡의 여드름…>
『여름을 다시 살며』에서 밝고 확실한 언어를 잃은 자신을 거세되어 있다고 실감한다. 시인이란 어디까지나 언어를 통해서 그 자신과 세계를 파악하는 언어적 존재임을 생각게 하는 시라고 할 것이다. 무기력한 시인이 다시 밝고 확실한 자기의 언어를 지니게 된다는 것은 곧 자기의 삶의 회복이며 시인으로서의 기능의 부활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같은 비시의 계절, 빈 껍질의 위조된 언어만이 범람하는 시대에선 뜻대로 안 되는 거기에 그는 비단 자기의 문제를 넘어선 동 세대 공통의 어려움을 전단하고 비판하고 있다.

<정중수의 유년의 바다>
이 달의 시중에서 정중수씨의 『유년의 바다』를 읽게된 걸 필자는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필자로선 처음 대하는 이름이지만 『유년의 바다』는 기억할만한 시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바다는 매일 수천장의 유리벽들을 날라 오고 나는 그것들을 밤마다 나의 꿈속으로 실어 날랐다.>이렇게 시작되는 첫 연부터 이미지 전개가 환상적이면서도 즉 물적이며, 유동적이면서도 조각적인 것이 일관된 특색이다. 바로 그 점은 유년 시절의 시인이 갖는 사물의 파악 방식 그 자체를 암시해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가만가만 밧줄을 잡아당기면 바다는 불쑥 몸을 솟구쳐 꿈을 은의 날개로 펴 올렸다.> 까다로운 표현이나 기발한 언어는 하나도 안 썼건만 시의 구석구석이 다이 정도로 생동해있다.
표현의 밀도가 알맞은데다 구성도 치밀해서 나무랄 데가 없다. 신인의 시답게 이 시가 갖는 신선한 표현미는 필자로 하여금 대여섯 번이나 되풀이 읽게 만들었다.
결국 시 전체가 평이한 말만을 구사했으면서도 고도의 상징성을 획득해 갖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시간 (유년)과 영원 (바다)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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