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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는 식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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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수돗물을 빼돌려 팔아먹은「물 도둑떼」들이 검찰수사에 걸렸다. 물 기근 속에서 한 동이의 수도물이 아쉬운 판에 일선 수도사업소 직원들이 업자들과 이른바 「특혜급수」로 물 도둑질을 해온 것이다. 이 같은 수도사업소의 부정은 비단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수도가 보급되어있는 도시마다 거의 공공연한 수법으로 저질러지고 있다. 검찰 조사에 의해 밝혀진 수법을 보면 주로 검침원과 짜고 수도계량기의 바늘을 역회전으로 조작하거나 수도관을「T자」형으로 가설, 물을 대량으로 돌려 빼거나 부정 수도공사를 해주는 등 갖가지 방법이 드러냈다. 수법을 중심으로 수도사업소 부정사건을 밝혀본다.
서울지검은 서울시 산하 9개 수도사업소 관계 직원들이 상습적으로 수돗물을 부정 급수해주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수사에 착수, 9일 현재 업자 4명과 돈을 받고 이를 묵인한 관계 직원들을 구속했다.
첫 「케이스」로 구속된 삼성목욕탕 주인 박세영씨(68·종로구 관철동 24)는 67년 4월부터 3년 동안 검침원 등 관계 직원들에게 돈을 집어주고 급수 검침「카드」를 허위로 꾸며 사용량을 줄여왔는데 지난 5월 한달 동안 실제로는 7천여입방미터를 쓰고도 9백 34입방미터밖에 쓰지 않은 것처럼 꾸며 물 값을 적게 무는 등 모두 36차에 걸쳐 1백 50여만원의 수돗물을 부정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백룡목욕탕 주인 배길룡씨(56·서대문구응암동309)의 경우는 지난 4월 목욕탕을 새로 지을 때 무허가 수도 가설업자인 변병천씨(28·구속)와 짜고 계량기가 붙어있는 지관에 직경 1「인치」의 비밀 수도관을 연결, 2층 옥상에 있는 저수 「탱크」로 끌어들여 매일 약 20입방미터씩 물 값을 내지 않고 사용해왔다.
수돗물 소동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것처럼 「물 빼돌리기」도 업자와 관계 직원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왔다.
서울시에 의하면 시내에 상수도 시설이 되어 있으면서도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 78개동, 급수전이 있으면서도 물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곳이 4천 5백 62개소로 집계되어 있다. 대부분 변두리 지역이거나 고지대인 이곳들은 시간별로 물을 받는 제한급수는 커녕 아예 절수지대-. 당국은 수원지 시설이 현저히 모자라는데다가 그나마 낡은 수도관 때문에 생산량의 42.5%가 누수로 흘리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검찰은 이번 조사에서 누수로 보고되는 수돗물의 상당량이「특혜 급수」등 뒷거래로 빼돌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호텔」,「사우나」탕, 독탕 등 물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사치성 소비업소가 경쟁하듯 늘어나 수요량이 급격히 늘면서 이에 따라 물 빼돌리기 수법도 갖가지로 교묘해졌다.
우선 검찰조사에서 밝혀진 이들 업소들의 물 빼돌리기 수법을 보면 가장 많은 것이「계량기 역회전 조작법」. 검침원과 업자, 각종 계기를 조작하는 특수 기술자가 짜고 계량기의 바늘을 거꾸로 돌려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계량기 바늘의 조작은 업주가 사용료를 몇 만원선까지 줄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나 여러 달 계속하다보면 기술자나 검침원이 알아서(?) 처리한다.
1천 단위의 계량기 숫자를 0으로 만들거나 다른 숫자를 적당히 줄여놓고는 인하 조정비란 명목으로 업주가 이득을 보는 액수의 3분의 1가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동원되는 기술자는 보통 구역별로 1명씩, 수도사업소에 전속이 되다시피 고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종로구의 경우 기술자인 유모씨(41·수배중)는 이른 아침부터 수도사업소 바로 앞 H다방에 대기하고 있다가 검침원과 함께 업소·가정 등에 출장, 1회 조작에 5백∼1천원씩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비밀이 보장되고 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집안에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심지 업소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
이 방법보다 더욱 지능적인 것이 수도관의 T자형 가설법. 대부분 신설 목욕탕에서 쓰는 수법으로 공사 때 미리 수도 가설업자와 짜고 계량기가 있는 수도관 일부를 잘라낸 다음 특수장치가 된 T자형의 수도관을 연결하면 물은 계량기를 통하지 않고 얼마든지 빼돌려 쓸 수 있다.
업자는 이따금 계량기를 거치는 수도관을 열어 사용량을 적당히 조정하면 된다. 처음부터 관계 직원과 짜고 하는 일은 드물지만 대부분 담당 검침원은 이를 알고도 묵인해주는 실정. 그래서 검침날짜가 아니라도 이들 업소에 검침원이 들르기라도 하면 상당히 대접을 받곤한다고 한 수사관이 전했다.
이밖에도 ①검침날짜가 다가오면 멀쩡한 계량기를 망치로 때려부순 뒤 새 계량기로 바꿔치기 하거나 ②계량기의 납땜을 풀고 가는 모래를 바늘 사이에 뿌려 회전속도를 줄이거나 ③계량기 밑에 가는 구멍을 뚫고 가는「파이프」를 통해 압축 공기를 불어넣어 바늘을 돌려 놓는 방법 등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검찰은 또 물 기근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으로 변두리 지역에서 무허가 수도 시설업자들의 무질서한 부정공사를 지적하고 있다.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수도관계 직원을 낀 가설업자들이 나타나 수도가설을 권유, 공정가격이라는 5만원씩을 받고 물을 끌어주는데 때로는 계량기 없는 수도를 가설해주어 환영을 받는다.
작년 한햇동안 당국에 적발된 부정 수도공사만도 모두 1천 6백 54건이었으나 이들이 부정 사용한 양은 헤아릴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첫날 목욕탕업자 몇 명이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J수도사업소에서는 소장이하 전 직원이 미리 겁에 질려 자리를 뜨고 텅 빈 사무실에는 급사 한 명만이 전화통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관계 직원들은 애써 부인하고 있으나 검찰은 이번 조사에서 상당량의 부정사용량이 누수로 보고되고 종종 그 보수비까지 받아 가로챈다는 정보를 상당히 근거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검찰이 압수한 「검침관리부」가운데에는 담당 직원이 1차로 조정한 검침량을 소장 또는 담당계장이 거듭 줄여서 확인(?)한 것도 있어 부정이 뿌리깊은 지금의 수도 행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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