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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의 아픔 나눠야 친구가 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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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금은 매화 철입니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 우정의 해'가 얼어붙고 있는 이때 여러분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 매화꽃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중.일 세 나라 사람은 송죽(松竹)과 함께 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겨울철 친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꽃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핀다고 해서 '화형(花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매화는 추위의 아픔을 서로 나눠야 친구가 될 수 있고 눈 속에서도 일찍 철이 들어야 형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 일본 시마네현에는 '나라 땅 끌어오기(구니비키)'신화가 있다. '야쓰카미즈오미즈누노미코토'라는 신이 이웃 땅을 밧줄로 묶고 끌어들여 영토로 삼았다는 것이다. 모두 네 차례의 구니비키 중 가장 먼저 끌려온 땅이 바다 건너 신라의 곶이었다고 한다. 그림은 구니비키 신화를 묘사한 것으로, 시마네현에 있는 이즈모 오야시로(出雲大社) 신사의 홈페이지(www.izumooyashiro.or.jp)에 게시돼 있다.

안타깝게도 일본말에는 그에 알맞은 말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계절을 '철'이라고 하고 그 변화를 깨닫고 행동하는 사람을 '철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나이에 관계없이 봄이 돼도 묵은 옷을 벗을 줄 모르면 '철없는 사람' 혹은 '철부지'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래요. 철은 그냥 드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옛 선비들은 동짓날이 되면 81개의 매화와 꽃봉오리를 그려 창문에 붙여놓고 하루에 한 송이씩 색칠해 갔습니다. 바로 이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그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을사조약 100년째' 되는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삼고 비록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 60주년이지만 이제는 일본인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기로 한 것입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한 시마네(島根)현 의회를 탓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분은 국가 주권의 문제인 영토 문제를 지방의회가 운운한다는 것이 명백한 월권행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어느 신문 사설에서도 지적한 대로 그 같은 선포가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는 무의미한 행위라는 것도 서로가 파악하고 있는 일입니다.

다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왜 하필 지금까지 말이 없었던 독도의 영토 문제를 거론해 '한.일 우정의 해'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는가 하는 점을 여러분과 함께 묻고 싶은 것입니다. 백 가지, 천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 원인은 단 한 가지, 변화해가는 시대를 읽을 줄 모르는 철없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자치성(현 총무성)이 추진해 오던 '자치체 국제교류(自治體 國際交流)'는 유럽연합(EU)을 모델로 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염두에 둔 정책이라고 들었습니다. 21세기의 문명과 그 역사 속에서는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도 혼자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다테마에(명분)'때문에 영토 문제로 나라와 나라 사이가 어려운 정황에 빠지더라도 지자체끼리는 서로 자유롭게, 그리고 다양하게 교류의 숨통을 터놔야 한다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시마네현은 그동안 한국 지자체와 결연해 오랫동안 쌓아올렸던 우호관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으며 도리어 한.일 양국에 돌이킬 수 없는 틈을 벌려놓고 만 것입니다.

남의 땅 끌어오는 신화, 역사로 바꿔서는 안 된다
시마네현은 일본의 전설과 신화의 발생지인 이즈모(出雲)지방에 있는 고장입니다. 그리고 그 신화의 하나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는 '구니비키(國引ぎ-나라 땅 끌어오기)'라는 신화입니다. 기운이 센 야쓰카미즈오미즈누노미코토(八束水臣津野命)의 신이 자기 나라 땅이 너무 좁고 작은 것을 알고 어디 남의 나라 땅을 끌어올 데가 없나 높은 산 위에 올라 바다 너머를 살펴봅니다. 그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바로 '신라의 곶(新羅のみさき)'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쟁기로 썰고 밧줄로 묶어 이즈모 땅으로 끌어다 붙입니다. 지금도 마쓰에(松江)시의 인터넷 관광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시마네현까지 포함된 그 국토 신화를 만화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니비키의 국토 확장은 신화시대의 철없는 꿈입니다. 21세기의 힘은 이웃나라의 땅이 아니라 마음을 끌어당기는 우정의 밧줄에서 나옵니다. 그런 시대의 변화를 가르쳐 주고 신화와 역사의 차이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역사교육이며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일입니다.

'2003년도 세계 34개국 국민 정체성 비교 연구'(KGSS와 ISSP 조사)의 역사 분야, 국민 자부심 조사에서 한국은 24위고 일본은 27위로 하위에 속해 있습니다. 국력 지수에서 2,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과 독일이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와 그때까지의 수치스러운 국가적 만행이 그들의 의식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의식조사의 수치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자긍심을 주기 위해서 역사를 은폐하고 왜곡해 신화로 바꿔놓으려는 철모르는 시도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본 사람들이기에 '역사는 오늘의 거울(昔は今の鏡)'이라는 속담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훌륭한 역사가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거울은 누구 편도 들지 않고 있는 우리 모습을 그대로 비춰줍니다. 그래야 자신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군요. 일본말로는 먼지도, 긍지심도 다 같이 '호코리'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일본인의 참된 자부심은 역사의 먼지를 털어낼 때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는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교토의 관광명소의 하나인 이총(耳塚)은 임진란 때 왜병들이 도요토미에게 수급 대신 조선인의 귀를 잘라 바쳤던 것을 묻은 무덤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귀는 두 개라 전공을 속일지 모른다 하여 코를 잘라 보내라"고 명했고, 1597년 9월 한 달 전라도 진원과 영광에서 보내온 코가 기록된 '요시가와(吉川)문서'에만 1만400개나 됩니다. 하지만 종군했던 승 게이넨(慶念)은 약탈과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동족의 만행을 절망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일기에 숨김없이 그 참상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의 구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구한말 조선에 사절로 왔던 외무성 관리 사타 하쿠보(佐田伯茅)는 2개 연대만 있으면 조선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주창합니다. 그런 사타마저도 그 보고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 1870년)에 독도가 조선에 부속해 있음을 명시(竹島 松島 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사타 하쿠보를 맹렬히 비난하며 정한론에 반대하는 건백서를 집의원(集議院)에 올리고 난 뒤 할복자살한 요코야마 야스다케(橫山安武) 같은 지사가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는 메이지(明治)유신을 주도했던 사쓰마 항에서 가장 촉망되던 지식인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의 초대 문부대신에 올랐던 모리 아리노리(森有禮)의 친형입니다. 매화를 '화형'이라고 부른 뜻을 이제 아시겠지요. 모리가 대신이 되었을 때 그 부친은 "아 네가 대신이냐! 네 친형이 살아 있었더라면…"이라고 아쉬워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탐식하고 대륙을 넘보던 청일전쟁에 대해서 당시 일본의 개화를 이끌어 왔던 가쓰 가이슈(勝海舟)는 반대의 소리를 높였습니다. "형제싸움은 개도 안 먹는다. 일본이 이긴다 해도"라고 회의론을 폅니다. 또한 "중국 5억의 민중은 일본에는 최대의 고객"이라고 마치 요즘 사람과 똑같은 의견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이미 반은 죽은 나라요 빈약국(貧弱國)이라고 경멸하고 있지만 두고 보면 곧 소생하여 힘을 찾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은 일본 사람의 옛 스승이었음을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氷川淸話')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가토 기요마사는 알아도 게이넨 스님은 모르고 정한론은 알아도 그에 반대해 간사(諫死)한 사람의 역사적 사실은 잊고 있습니다. 서로 모르고 있는 숨은 사실을 밝혀 함께 역사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나누어 씻고, 후세에 거울로 남기는 것이야말로 한.일 우정의 해에 만들어 낼 역사교과서라야 할 것입니다.

식민 지배가 일본인의 부끄러운 역사였다면 식민 지배를 당한 한국의 역사 또한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 부끄러운 역사를 은폐하지 않고 캐내어 가르친다는 것은 이미 그 부끄러움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인이 공유하고 있는 온고지신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무 죄도 없는 귀여운 자녀들에게 역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과거 군국주의 역사에 비해 종전 후 새 나라로 거듭난 오늘날의 반세기 역사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당당한 것인가를 자라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철들게 하는 교육이고, 남보다 일찍 피어나 철모르는 사람들의 형 노릇을 하는 책무일 것입니다. 역사를 읽는 동안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한국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일본인 자신들을 위해 어떤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과연 더 자랑스럽고 더 이로운 것인지는 여러분 자신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올바른 선택은 견원지간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을 형제가 되게 한 EU처럼 더 평화롭고 번영을 약속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지역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란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높은 산꼭대기가 아니라 낮은 골짜기와 평지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정부의 고위층이나 지식 엘리트층보다는 항상 평균 수준의 보통사람들로부터 역사는 그 양분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고 만세를 외치는 일본 정치인들의 모습은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본의 힘은 한.일 공동 주최로 열린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한국의 젊은이들과 스크럼을 짜고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던 일본의 젊은이들입니다. 후유소나(겨울연가)의 촬영장을 찾아와 춘천 거리를 깨끗이 쓸어준 욘사마.지우히메의 여성 팬들 손에 든 빗자루입니다.

철이 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철든 사람들이 역사의 앞장에 서야 합니다. 독립이냐, 종속이냐의 이분법 시대는 갔습니다. 상호의존적인 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미워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아닙니다. 철들지 않은 일본인, 철모르는 행동을 하는 일본인인 것입니다.

눈 덮인 골짝 어디에선가 은은한 매화의 향내가 풍겨옵니다. 아직도 하늘은 눈보라이고 들판은 얼음이지만 옛 한사(寒士)들처럼 탐매(探梅)길에 오르기 위해 지팡이 하나를 준비합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우정의 해'에 일본인들에게 보내는 나의 외로운 메시지입니다.

중앙일보 이어령 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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