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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 3년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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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렸을 때 나의 시골에 땅마지기나 가지고있던 사람이 몇 차례 서울을 오르내리더니 사람이 변했다. 양복입고 구두신고 게다가 금테 안경에 개화장(스틱)까지 곁들여, 시쳇말로 비까번쩍하는 몸치장이 어린 마음에 존경과 선망의 인물로 보였는데 촌로들은 혀를 차며 저 녀석 패가망신이나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 여겼던 일이 생각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민족중흥의 기치와 고도경제 성장이라는 뚜렷한 목표아래 강토는 나날이 변모되어 가고있다. 6·25전란으로 황폐했던 서울은 인구 5백만이라는 세계 10대도시의 하나가 되었고 국토를 종횡하는 고속도로며 이곳 저곳의 생산공장은 마치 이 강산을 비단옷과 비단구두로 옷 입히듯이 꾸며가고 있어서 외국사람들 조차도 칭찬이 대단하다.
며칠 전 우리나라의 어느 유수한 수출품생산공장의 생산책임자와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라 어느 공장엘 가든지 대학졸업생이면 3년 이내에 모든 기술적 문제를 습득할 수 있고 그 이상의 기술개발을 하려면 여러 가지 여건으로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실토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나라 기술 수준은 대학졸 3년생이 아니냐고 나에게 반문하는 것이다.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초기단계에는 외자도입·기술도입이 불가피한 일이며 경제적인 면만을 따져 본다면 기초과학이나 기술개발연구에 대한 투자는 일종의 사치품같이 보기 쉽다.
그러나 이미 앞선 선진국의 예를 보면 그들은 개발도상에서 경제적 수지타산을 무시하고 개발연구를 제도화했고 오랜 조직 공학적인 체험으로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본다. 확실히 개발연구를 제도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기술도입보다 힘든 일이고 또 수지도 맞지 않는 일이지만 안이한 기술도입만으로는 마치 민족자본 없이 외자만으로 경제적 자립을 바랄 수 없는 것과 같이 기술적인 혁신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오늘의 현실에서 수지는 맞지 않고 또 여러 가지 진통이 생길 것이겠지만 우리나라도 미국의「아폴로」계획의 1백분의 1정도의 규모라도 좋으니 뚜렷한 기술개발의 목표를 설정하고 과학자·기술자·경제학자·공무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이것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여기서 파생될 경제적수지도 대단할뿐더러 우리나라의 기술수준도 대학졸 3년생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앞서 말한 생산 책임자와의 대화 중에서 나의 어린 시절 금테안경에 개화장이나 짚고 다니던 속빈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며, 우리나라의 근대화도 만일 속빈 근대화라면 어떻게될 것인가 하고 마음이 죄어진다. <윤세원><경희대 공대 학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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