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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교수의 술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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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친한 사이에 경사가 있어 축하하는 자리에는 되도록 나가기로 하고있다. 이 각박하고 인정이 메마른 세상에서 남의 좋은 일을 동경한다는 그 일 자체에 뜻이 있음이 물론이지만, 청첩을 받고도 혹시 빠질라치면 나중에 당자를 만났을 때 무어라고든 한마디 변명을 해야하는 일이 거북스러워서이다. 그러나 같은 좋은 자리라곤 하지만 수연으로 불리는 회갑을 축하하는 자리에 나가면 언제나 석연치않은 일말의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음으로 다가간다는 사실에 틀림없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나이를 잊고 살아가기 마련인데,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당자에게 일부러 나이를 일깨워줄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또 장수한다는 것은 이미 살 나이를 넘어 같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우리 나라만 해도 근년에는 의약의 덕택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60을 넘은 지가 벌써 인줄로 알고 있는데도, 그 평균수명에 못차는 60을 살았다하여 장수라는 말이 과연 합당할 것이며, 그것이 당자에 대한 예절일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각설하고, 얼마 전 S호텔의 넓은 홀에서 오랜 동료인 P교수의 회갑축연이 있었다. 원체 인격이 고결하고 학덕을 겸전한 분인지라, 학계와 교육계의 하객이 운집하여 가난하고 고단하게만 살아온 교육자에게도 이런 한때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흐뭇한 정경을 이루었다. 예의 축사·축가와 예물진정이 끝나고, 주인공의 기지와 도학에 찬 답사가 또한 자리에 잘 어울러 만당의 갈채를 받았다. 그중에서 특히 회중의 감명을 자아낸 한 귀절을 여기 옮겨보면-
『나는 30여년을 교직에 종사하고 글도 써왔습니다만, 그건 내 재미로 내가 하고싶어서 해 온 것이지 결코 누가 시켜서 보수를 바라서 했거나 또 학자가 된다거나 후배를 키운다는 의무감이나 목적의식에서 해온 것은 아닙니다. 훈장노릇이 대우가 나쁘고 보수가 적다고 불평하는 이도 많지만 내 경우는 내가 하고 싶어서 제멋대로 제재미로 해 온 일인데 매달 꼬박 꼬박 월급까지 타왔으니 이런 고마운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법도는 매양 상위되기 마련이며, 개체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상극을 빚는데서 모든 문제는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공자와 같은 이도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라 하였다. 그런데 우리 P교수는 몰론 그의 성품에서 오는 겸허가 풍긴 즉좌의 술회이긴 하나 70도 아닌 60평생을 마음이 하고자하는 대로하였는데도 불유구의 경지도 넘어 많은 후진을 길러 사회에 덕을 끼치고, 그위에 만만찮은 스스로의 문명까지 이루어 놓았으니 범속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부러운 신세라고 아니할 수 없다. [김성근(서울대사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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