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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 당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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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에드워드·R·G·히드는 역전승의 수상으로 세계의 스파틀라이트를 받고있다. 영국의 저널리즘은 노동당당수 윌슨의 승리를 한결같이 예고했었다. 그러나 개표결과는 타이·스코어인 듯 싶더니 결국 히드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에 노동당과 보수당의 대결은 마치 멕시코월드·컵 축구전에서 영국대 서독의 접전을 연상시켜준다. 노동당은 영국팀이 분패하듯 그렇게 지고 말았다.
히드는 근착 이코너미스트지에 따르면 영국에서도 남부인들을 제외하고는 그 이름이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65년8월 그가 보수당당수로 추대되었을 때 영국의 신문들은 당내혁명이 일어났다고 떠들었다. 한 목수의 아들인 중산층 출신에서 당수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의 역대 당수들인 체임벌린·처칠·이든·맥밀란·더글러스·흄등 누구의 면모를 보아도 서민의 문벌은 없다. 모두가 재산가들이고 명문의 출신이었다. 그러나 히드는 이들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외지의 가십은 그를 『반장타입』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중학시절엔 깍듯이 교복을 입고 다녔으며, 파시스트와 공산주의학생들의 논쟁에서도 언제나 초연했었다. 담임선생만은 그를 두고 대인풍의 우등생이라고 예언한바 있었다.
그러나 히드도 옥스퍼드 출신임엔 틀림없다. 그는 장학금을 받는 우등생으로 옥스퍼드·유니언(학생자치회)의 회장직도 맡았었다.
지난 선거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의 독신은 비난의 화살이 되었다.
그러나 더·타임즈지(런던·타임즈)는 이렇게 일갈한 적이 있었다. 『‥독신이라는 비난은 이것(선거)과는 무관하다. 보수주의가 사교성을 적게 의식하면 할수록 국민은 보다 높은 능률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는 국가적 지도자를 뽑는 것이지 수상관저의 접대를 맡을 부인을 뽑는 것은 아니다.』
테드(히드의 애칭) 자신도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유머러스한 대답을 했었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도 처음 알았다.』
50년 총선에서 하원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6년만에 원내대표 간사로 뽑혀 수에즈동난을 무난히 넘겼다. 정치적 수완을 알만하다.
영국인이 그에 대한 매력을 찾는다면 다이내믹한 성격에, 오히려 래디컬(급진적)한 그의 정책일 것이다.
히드의 역전승은 바로 노귀부인으로 전락해가는 자신의 국가에 대한 영국인들의 초조감을 보여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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