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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해방에서 환국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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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규수의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키가 크기만 하면 인품이 좋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하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면서 닥쳐오는 일을 해야만 됐다. 양전마마가 계신 앞에서 나는 구술시험을 받은 셈이다. 아버님의 침묵이시며 우리 집 가문의 내력이며 어른들의 생신날과 연세, 또는 제삿날까지도 물으셨다.
양전마마께서 물으시는 대로 거침없이 대답을 하자 기특하신지 무릎을 치시며 기꺼워하셨다. 그로 말미암아 내용적으로는 거의 나로 확정이 된 셈이다.
그러나 나라법은 그렇지가 않아서, 형식적이나마 세 명을 뽑아야 되므로, 나외에 의정대신을 지낸 민영규씨의 따님과 심씨댁 따님, 이렇게 셋이 첫 간택에 뽑혔다. 1백50명을 몇차례씩 추린후 결국에 가서는 셋을 뽑고나니 밤은 이슥하여 벌써 자정이 가까웠다. 나는 희색이 만면하신 양전마마께 인사를 드린후 마당에 대령하고있는 사린교에 올랐다. 앞에는 초롱을 든 정감이 쌍쌍이 여덟이 서고, 뒤에는 하사하신 예물과 상받은 교자가 따랐다. 집에서는 벌써 전갈을 받아 수표교앞까지 마중을 나와있었다. 온 동네가 떠들썩한 것이 정신이 없었다.
사린교에서 내려 대청에 오르자니까 첫닭이 울었다. 거창한 행사에 고된 하루가 지샌 것이다. 어머님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무척 기뻐하였다. 그러나 나는 기쁨보다도 어떤 무거운 짐을 진 듯이 가슴을 누르는 중압감을 느꼈다.
간택에 채택이 된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며 떼놓은 당상이건만 앞으로 나의 할일이 태산준령 같기 때문이었다. 만인의 어머니인 일국의 국모가 되려면 지혜나 재량에 있어서도 남보다 탁월해야하고, 덕망과 부덕도 남 유달리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파혼되던 날-그후 세월은 흘러 내 나이는 어느덧 스물둘이 되었다. 여자의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십여년전에 정해놓은 그분을 위하여 문밖에도 마음대로 못 나가고, 사람도 친척이외에는 피해가면서 살자니 정말 고통스러운 생활이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오후에 대궐로부터 상궁들이 우리 집에 나왔다. 한분은 창덕궁 제주상궁의 김상궁이고, 또 한분은 홍상궁이었다. 방안에 들어선 그들은 『대감마님께 문안드리옵니다. 부인마님께 문안드리옵니다』라고 하면서 절을 한후에 나란히 앉았다. 한참만에 김상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황공하온 말씀이오나 신물을 환수하러 나왔아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자다가는 꿈도 꾼다지만, 이런 꿈밖의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이오?』
『물론 놀라실줄 알고 왔사오나 상의 뜻이 그러하시다니 어찌하옵니까?』
『상의 뜻이시라니 간택을 치르고 신물까지 나눈지 10여년이 된 오늘에 와서 뜻이 변하셨단 말씀이오?』
『그리 노하실 것은 아니옵니다. 강약이 부동으로 총독부에서 지령한 일이 온즉 어찌할 도리가 없사옵니다.』
『그건 나는 못하겠소. 내 자식의 일생을 망치고 게다가 그 동기까지도 폐혼케되는 그런
일을 어찌하라고 하겠소. 못해요.』라고 하시며 아버님께서 언성을 높이시자, 이번엔 어머님께서 울먹이면서,
『아무리 나라일이 중타해도 자식들의 전정을 막아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씀이오. 큰애를 그렇게 해놓으면 그 애는 물론이거니와 그 아래 아이들까지도 전정을 막아버리게 되지 않습니까. 역혼은 못하는 법인데 세상에 이런 법도 있읍니까?』라고 하시며 통곡을 하시었다.
그와 같이 민규수의 양친은 사랑하는 딸의 장래를 위해서 끝까지 버티었으나 결국 고종황제의 어명을 내세우는 총독부의 성화같은 독촉을 견디다 못하여 왕실에서 받은 금가락지등의 신물을 반환하고 딸을 다른 데로 시집보내겠다는 서약서까지 쓰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민규수는 『간택에 그쳤다 하더라도 황실의 약혼녀답게 깨끗이 살겠다』고 상해로 망명해서 24년간이나 꽃다운 청춘을 헛되이 보낸후 해방되던 다음해에 귀국하여 『백년한』이라는 눈물의 역사를 쓰고 1967년 동래에서 73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영친왕이 발병하기전 동경에서 필자 문규수의 이야기를 꺼내었더니, 은발동안의 영친왕은 『민규수도 가엾은 사람이야』하고 얼굴은 흐리었고 옆에있던 방자부인은 귀국하면 민규수를 꼭 한번 만나보겠다고 하였는데, 이제는 영친왕도 민규수도 다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백년한』이라기 보다도 『무궁한』이라고 함이 오히려 더 타당할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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