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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부적절한 압력에 시달려 자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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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보시라이 전 충칭 시 당서기가 22일 중국 산둥 성 지난 시 중급법원에서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공개재판을 받고 있다. 그의 옆에는 1m86㎝ 키의 보시라이가 왜소해 보일 정도로 건장한 법원 경위 2명이 좌우에 서 있다. 보시라이를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중국 당국의 조치로 해석된다. [지난 AP=뉴시스]

보시라이(薄熙來·64)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뇌물수수·공금횡령·직권남용 혐의를 부인하며 재판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보시라이는 22일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중급법원에서 열린 공개재판에서 중앙기율위에서의 자술은 정신적 압박 아래 이뤄진 유도 신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쉬밍(徐明) 다롄 스더(實德)그룹 회장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며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증언은 가소롭고, 증인 탕샤오린(唐肖林) 다롄국제발전공사 총경리는 미친 개가 짖는 꼴이라고 말했다.

 1980년 문화대혁명을 주도하다 실각한 장청(江靑)을 심판한 재판 이래 33년 만의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세기의 재판’은 보시라이가 압도했다. 저널리즘 석사로 언론의 속성을 잘 아는 그는 중국 정계 최고의 샤오슝(梟雄·야심차고 사나운 영웅)다웠다. 보시라이는 피고인임에도 증인석에 나온 쉬밍을 상대로 20여 개의 질문을 쏟아내며 수뢰 행위가 자신과 무관했음을 주장했다. 아내 구카이라이와 선을 그으면서 재판을 주도했다.

 홍콩 봉황TV 등에 따르면 오전 8시43분(현지시간) 재판정에 들어온 보 전 서기는 그동안 조사에 지친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먼저 검찰은 보 전 서기가 다롄(大連) 시장·당서기, 랴오닝(遼寧)성 성장, 상무부장으로 재직한 1996∼2006년 탕샤오린·쉬밍 등에게 특혜를 주고 2179만 위안(약 40억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논고했다.

 그는 검찰의 논고를 강하게 반박했다. “참 우습고 가소롭다. (아내) 구카이라이가 나와 함께 사용한 비밀 금고에 8만 달러, 5만 위안을 놓았다고 인정했다는 증언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구는 베이징 집에 아주 큰 다른 금고를 두고 엄청난 돈을 넣어 놓고 썼다.” 보의 변호인도 “구는 이미 자신의 재판에서 정신질환자임이 인정됐다. 증인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보와 부인 구카이라이는 돈 문제 등으로 다투다 수년 전부터 별거 상태였다. 이어 계속된 검찰의 심문에도 보 전 서기는 조목조목 반박하며 부패 혐의를 부인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1시간에 걸쳐 진행된 재판 과정을 낱낱이 보도했다. 보는 탕샤오린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자신의 자백은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자백 당시 나는 부적절한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살아남을 길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석판사는 보에게 자유로운 발언을 허가했고 보는 검찰의 주요 증인 쉬밍에게 직접 반대 심문했다. 쉬는 이날 검찰이 부른 유일한 증인이었다. 쉬가 법정에서 “아프리카에서 (보의 아들) 보과과와 친구들이 휴가를 보내는 비용 1만 파운드를 줬고 2001년 당시 13살이었던 보과과의 신용카드 결제 비용 3만 파운드도 내줬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보는 쉬에게 매섭게 다그쳐 보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수 있다는 것을 쉬가 인정하도록 했다. 텔레그래프는 “중국에서 당 고위급 인사가 혐의를 부인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법원이 투명하게 이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당장 웨이보 등에는 검찰이 보의 유죄를 받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예상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NBC 방송은 법률전문가 등을 인용해 “보의 예상치 못한 강한 저항은 재판을 장악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보의 혐의는 사형이 가능하지만 부인 구카이라이와 마찬가지로 사형 선고 뒤 이를 유예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종신형이나 20년형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 전 서기는 중국 권력의 최대 파벌인 태자당의 선두주자로 차세대 지도자 후보로 꼽혀 왔으나 부인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며 몰락했다. 그는 평등과 사회 보장을 강조하는 좌파 정책을 추진해 마오쩌둥((毛澤東) 추종자 등 보수 세력으로부터의 지지를 받았다. 22일은 덩샤오핑(鄧小平) 탄생 109주년 기념일이다. 중국의 ‘개혁’을 상징하는 날이다. 덩의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지난해 12월 당 총서기 첫 외부 일정으로 선전을 방문해 덩의 ‘개혁’을 강조했다.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의 생일에 맞춰 보수파인 보시라이를 단죄하는 재판이 열린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란 추정도 나온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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