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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의혹의날에도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고, 괴로워 하는 날에도 너만이 나의 지팡이요, 기둥이었다.』 이것은「투르게니에프」의 『「러시아」말』이라는 시의 한귀절이다. 「투르게니에프」는 임종의 자리에서도 「러시아」문학인들에게 『원컨대 우리들의 귀중한 유산인「러시아」말을 순수히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투르게니에프」의 시를 읽을때마다 그리고 유언을 생각할 때마다, 일제때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고 그토록 괴로웠었을 날에 우리말을 지팡이로 삼고 기둥으로 여기던 사람이 과연 그 얼마나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볼때가 있다.
며칠전 광주방송국의 어린이노래자랑 시간이라고 기억된다.
비운의 황태자 영친왕의 장례식 기사를 착잡한 마음으로 읽고 있노라니 화교국민학교의 소년 소녀가 출연해서 「고향의 봄」을 자기나라 말로 잘 불렀다. 그리고는 대학은 어디로가려고 하느냐 는 「아나운서」의 물음에 「대만」이라고 의젓이 대답한다. 우리 재일교포들을 생각해본다. 일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사촌오빠가 귀국한 적이있었다.
철이 들고 처음 만나는 오빠지만 우리말을 전혀 몰라 그저 꿀먹은 벙어리처럼 서로 아무말도 나누지 못했다.
백지와 「펜」을 들고 나의 얇은 영어와 한자 실력을 총 발휘해서 백지를 까맣게 물들여야만 의사가 소통될 형편이었다.
틀림없는 한국 사람이면서도 우리말을 한마디도 모르는 오빠, 모국어를 잊어버린 사실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 할줄 모르는 오빠가 어쩐지 정이 가지않고 서먹서먹 하기만 했다.
얼마전 일본에서 수학중인 우리천재기사 ○○군이 잠깐 고국에 돌아왔을때 일본말을 쓰더라고 한다.
언어는 바로 그 겨레의 생명이라는데 모국어를 모르는 천재가 어떻게 자랑스러울 수가 있고 재일교포들의 모국방문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민족의식을 잃어가는 그들에게 어떻게하면 우리 언어와 민족애를 흡수시킬수 있는지 이것도 생각해봐야 할 큰 과제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경자(25·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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