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측 '北송금 특검' 수용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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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측이 20일 대북 비밀송금 문제에 대한 특검수사의 단계적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유인태(柳寅泰)정무수석 내정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특검에 대해 열린 자세로 야당과 협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니면 국회에서 몸싸움을 하거나 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두가지 방법밖에 없는데 새 정부로서는 둘 다 엄청난 부담"이라는 게 이유다. 그러면서 柳내정자는 "우리가 한나라당과 직접 협상할 입장은 못되고, 민주당 쪽에는 이런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柳내정자의 발언은 과거보다 유연한 접근이다.

그동안 盧당선자 측은 '처벌'을 전제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 특검수사가 시작될 경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특검에 관한 한 소극적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이같은 변화는 교착 상태인 여야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특검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바람에 관련자들의 국회 증언조차 성사되지 않고 있어 오히려 상황이 점점 꼬여가고 있다는 게 盧당선자 측의 진단인 것 같다. 더욱이 법사위에서 대북 송금 특검법을 통과시킨 한나라당은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특검법과 고건(高建)총리후보자 인준 동의안을 동시에 상정해 놓고 있다. 자칫 특검으로 인한 대립이 高총리 인준 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야의 극한 대치 상황 속에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盧당선자로서도 국정운영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柳내정자는 여전히 국회에서 대북 송금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먼저 진상을 규명한 뒤, 미흡할 경우 특검을 하자는 조건을 달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구주류의 입장은 이와 상치된다. 한화갑(韓和甲)대표는 이날 비공개 의원 총회에서 "특검법이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盧당선자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韓대표는 "거부권을 행사하면 대야관계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대북송금 문제를 과거 정부의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새 정부의 책임으로 고스란히 남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그는 "원내 문제가 어려운데도 당선자 측에서 한번도 상의한 적이 없다"는 불만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승희.강민석 기자pmas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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