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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스포츠로 넘은 장막 유고 간 한국농구|글·사진 장덕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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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3면

『신은 공평하지 못하다. 같은 아드리아 해인데 어째서 유고슬라비아 만 저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 창조했단 말인가』-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탄식한다. 그들은 바다건너 있는 중세 이래의 성곽도시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를 아드리아해의 보석이라 부르면서 선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절묘한 자연의 경승에 심취하는 건 이탈리아 사람들의 낭만일 뿐, 「독자적인 공산주의」 노선을 내걸고 있는 티토의 나라 유고는 발칸 반도에 자리잡았다는 숙명을 벗어날 수가 없다.
지난 5월10일 스플리트서 막을 올린 제6회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 참석 차 건각을 이곳에까지 옮긴 한국선수단의 눈에도 이탈리아 사람들의 라틴 적인 멋의 추구와 유고 사람들의 슬라브 적인 고행간의 격차는 완연했다
B조 예선에서 1승2패로 게임에는 패한 한국의 선수와 임원들은 처음 밟은 공산국가의 생활과 풍물에 호기심이 끌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은 곳, 많은 것을 보면서 공산주의의 이론과 현실의 거리를 새삼 확인했다.

<동구 자유화의 기수역>
유고의 사회주의는 한마디로 노동자에 의한 기업의 자치적인 관리와 정치의 지방자치라는 두 기둥 위에 서있다. 기업의 재산, 이윤의 원칙을 도입하여 산업과 분배의 자유와 소규모의 개인기업이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다. 유고의 이러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동구의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기에 43년 벌써 스탈린은 유고를 공산주의의 문중에서 파문, 코민포름서 추방하고 경제적인 봉쇄와 외교적 압박을 가했다.
절해의 고도처럼, 공산세계의 고아가 된 유고는 서방측의 지원을 얻어 전후의 경제재건에 착수했다.
55년 흐루시초프의 내방으로 소련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는 듯 하다가 56년 헝가리 의거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취한 것을 계기로 다시 고립되었다. 58년4월 당 제7차 대회가 채택한 진보적인 강령은 공산세계로부터 「현대 수정주의」라는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61년 제2차 스탈린 비판이후 소련은 유고를 다시 형제국으로 대했으나 중공은 여전히 비난을 계속하여 마침내 유고의 노선은 중-소 분쟁의 중요한 쟁점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국내적으로는 랑코비치 부통령이 이끄는 당 관료파는 경제자유화 정책에 항거하고 노동자와 학생들은 반대로 대학의 개혁, 보다 많은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 소동을 일으켜 빨치산 대장 출신의 티토는 극단을 가는 양파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었다.
66년7월 랑코비치를 해임하고 다시 당과 정부를 분리하는 또 하나의 실험에 착수하면서 유고는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와 같이 자유화를 지향하는 동구공산국가의 선배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북괴 공관 없는 독자 노선국>
이 나라의 수도요 비동맹외교의 성지인 베오그라드를 보니 사바드 강좌 안에는 노비·베오그라드라는 새 도시의 건설이 한창이다. 유고의 관청·회사는 집무시간이 7시라 6시쯤이 아침의 러쉬아워다. 베오그라드의 명동이라고 하는 테라제 가에는 서구 풍의 상점과 바·나이트·클럽이 즐비하여 관광 온 길손을 부른다. 「아름다운 도시」 또는 「백색도시」라는 의미의 테라제 가는 하오 4시가 되니 산책 나온 시민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5개 민족과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유고는 이미 민족의 모자이크 라지만 테라제 가는 인종의 전시장 같았다.
기자의 오메가 시계는 분명히 하오 5시인데 거리입구의 탑시계는 천연스럽게 3시50분을 가리키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 나라에는 북괴의 공관이 없다. 그래서 경기기간 중 이병희 단장과 선수 및 임원들이 스플리트나 베오그라드, 어쩌면 전 유고에 있는 코리언의 전부였다.
61년10윌 한국은 제7회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선수단을 보냈고 같은 해 11월 유고 선수단이 한국을 방문한바 있다. 발틱 해에서 우랄까지 뻗은 철의 장막 중에서 그런 대로 바깥세계를 향해 통풍을 하는 유고에 반공 한국이 스포츠로 이미지 식수의 실적을 쌓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미래를 향한 자세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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