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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국인학자를 찾아|족보 따라 두메 찾기 7년|서강대 사회문제연구소 버내스키 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월미엄·버내스키(William E. Biernatzki)박사(38)의 연구실 겸 집무실은 조그마하고 벽걸이 하나 없이 단조로왔다.
올해 개설한 서강대사회문제연구소의 소장직을 맡은 그는 요즘 첫 사업으로 시작한 연구과제(변천하는 한국사회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이미지와 그 역할)를 추진하는데 힘을 쏟고있다.
이 사업을 맡은 버내스키 박사는 놀랍게도 『한국씨족의 본관·파 구조의 변천』(Varieties of Korean Lineage Structure)으로 67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사회인류학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그가 1953년 군인으로 부산과 휴전선에서 근무한 것은 아이오와주의 조그만 시골대학에서 2학년을 마친 때였다.
부산의 한국군PX를 맡아 10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한국사람들과 접촉하게되고 그러는 사이 한국에 호감을 갖게됐다고 말한다. 『거기 근무하는 사람 대학생들 많았어요. 공부못한 미국 G·I들 대개 나쁜 쪽만 보기 쉬운데 저는 다행히 좋은 쪽 봤어요. 한국문화에 대해 흥미 갖게 됐어요. 사진도 많이 찍고…』 이것이 그가 한국학을 하게된 동기였다.
그는 57년 미국에 돌아가 예수회에 입교하고 58년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 인류학을 공부했다.
62년 서강대교수로 오면서 한국을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을 굳혔다. 그래서 한국을 대상으로한 박사논문을 준비하게 되었다.
63년 2월부터 넉달 동안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면 종곡리에 머무르면서 경주 김씨 동족부락을 현지 조사했다. 『양반동네예요. 옛날풍속 아직도 많은 산골을 골랐어요.』 기차 라인 없는 데로요.
문헌적 연구보다는 필드·웍을 주로했다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꽤 애먹은 것 같다. 지금도 한국어하고 영어를 뒤섞어 쓴다.
농촌지역에서도 조금 개화된 곳을 골라 두 번째 현지조사를 한 곳은 충청남도 대덕군 동면 내탑리 64년 봄이었다.
은진 송씨의 동족마을인 이곳에서 그는 양반의 전통을 충분히 호흡할 수 있었다. 대전이란 도시가 멀잖은 곳에 있었지만 『송시열 우암 후손 있잖아요. 거깁니다』한다.
여러 면으로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그해 여름 마지막필드·웍의 대상으로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의 3개 부락에서 조사를 끝냈다. 역시 경주김씨와 은진송씨 동족마을 들이었다.
『현대화해 가는 과정 속에서 가족구조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려는 것이지요.』
농촌지역에서 많이 살아남은 씨족·가족관계의 전통이 농촌인구의 도시이동과 함께 도시의 그것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정치적·경제적 연관 속에서 그 유대는 어떻게 변해가나 하는 것이 주관심사였다. 이 연구결과로 그는 67년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67년 필리핀의 아티네오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로마에 있는 예수회본부의 요청에 따라 『사회학적 종교조사』의 한국부문을 맡아 보고서를 작성했다.
69년12월에 다시 한국에 와서 주2시간의 인류학원장을 지도하는 그는『한국어공부 더 해서 7l년부턴 강의를 더 갖겠다』고 의욕을 보인다.
한국의 족보·가계를 연구하는 동안 『한국사람이 조상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좋다고 보지만, 지금 형태 상황 조금 복잡합니다』라고 느낀 바를 말한다.
전통고수보다는 변화 쪽에 더 힘써야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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