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삼 여행기<인니서 제 13신>
달구반·프라우 화산 꼭, 대기에서 산기슭에 내려봤을 때는 불덩이 같이 빨간 열대의 태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열대림이 우거진 저녁 풍경은 더욱 남국적인 정취가 넘친다.
이 산기슭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여행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천둥이 치고 비가 억수로 퍼붓는 그 화산 산꼭대기의 유황천에서 홀로 태연히 목욕했다고 했더니, 벼락이라도 맞으면 어쩌려고 그런 무모한 짓했느냐고 하며 백줴 나를 기인으로 보는 것이었다.
여행이란 안일한 것이어서는 싱거우니 이런 아기자기한 드릴을 겪어야 여행다운 멋이 있지 않으냐고 하며 차라리 벼락이라도 쳤더라면 더욱 극적일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고 하자, 그는 이 사람이 경말 미쳤나하고 나를 유심히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화구호의 유황천에는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후일담으로 미루고 이 화산에서 좀 떨어진 마을에 사는 여성의 이야기로 옮겨보자.
서부 자바의 반둥 북쪽에 있는 이 화산 근처의 여성들도 이 나라 고유의 사롱(자루처럼 좁게 아랫도리를 두르는 치마)을 입는다. 이들은 남자 못지 않게 농사를 짓기 때문에 손이 좀 거칠긴 하지만 얼굴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밉지도 않고 또 유별나게 곱지도 않고 수수하게 생겼다고 하는 것이 알맞은 표현일지 모른다.
얼굴이며 각선미는 괜찮지만 부족한 것이 하나있다.
열대지방이 거의 그렇듯이 맨발로 다녀서 발이 몹시 험상궂다는 것이다. 그전 필리핀에서는 「신발 신기」 여성운동을 내가 제창해 주어야 할까보다고 했었는데 「인도네시아」도 역시 여인들이 맨발로 다니며 따라서 걸음걸이가 매우 거칠어 보였다. 인도 여성보다는 어딘가 약간 눈이 작을까 말까하지만 동남아의 만 여성보다는 명상 적이면서도 큼직한 눈망울인데 미인의 조건인 이런 눈이 그만 그 발 때문에 균제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니 세계 여성 예찬자가 아니더라도 이 나라 시골여성들의 험상궂은 발은 무한한 연민을 자아낼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정치적·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사치스러운 미인론이 필요 없을지 모르나 제발 맨발로 다니지 말고 신을 신었으면 했다. 중년부인들은 설사 맨발이라도 될지 모르나 젊은 여성, 특히 가냘픈 소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맨발로 다녀 이미 거칠 대로 거칠어진 것을 보는 것은 더욱 서운했다. 이 나라에는 엘렌·케이와도 같은 여성운동자는 없는 것일까.
이 마을에서 잠시 쉬는 동안 시골사람의 사회생활을 알아보았다. 이슬람의 계율에 따라 아내를 네 사람은 거느린다고 알았는데 그것은 상류계급들이며 어려운 농민이나 서민들은 일부일처라고 한다.
바깥은 어둑어둑해졌는데 늦게 일하고 돌아오는 농부들이 어슴푸레 보였다.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테두리가 넓은 삿갓을 쓰고있었다. 저녁들을 짓느라고 굴뚝에선 연기가 오르고 마을은 적막 속에 잠겨갔다. 키가 몹시 크고 꼭대기에만 잎이 달려있는 야자나무가 검푸른 하늘에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고장도 자바 섬의 망이 거의 옥토이듯이 기름진 곳이다. 그것은 화산의 용암이 풍화되면 비옥한 땅이 되는 안산암이나 현무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땅이 좋은지 잡초들까지도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풍부한 대양 열과 합께 좋은 조건을 갖고 있으니 관개시설만 잘 갖추기만 하면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수확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자바 사람들이 그렇듯이 협동정신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들까지도 훌륭한 일꾼으로서 일하고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지하자원이 푸짐하고 기름진 농토를 가지고있더라도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는 한 농촌이 하루 이틀에 부강해지긴 어렵지 않을까 한다. 서울 자카르타는 서구도시처럼 화려했는데, 시골농가들은 너무나도 가난했다.
소가 못되어 여자로 태어났다는 우리 나라의 속담이 있듯이 가난하기 때문에 여자까지도 남자처럼 흙을 주무르고 일을 해야하는 인도네시아의 가엾은 여성! 값비싼 코티분의 향기가 풍기는 문명여성과는 달리 흙 냄새를 풍기는 이 나라의 농촌여성이야말로 아직 선악과를 따먹지 않은 창조된 직후의 이브라면 어떨까. 나는 이 호젓한 시골 마을에서 어두운 전원을 바라다보면서 일생동안 흙과 함께 살다가 사라지는 숙명을 지닌 이 나라 여성들에게 부디 행운과 영광이 있기를 간절히 빌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세계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수양하는 것은 남모르는 어떤 엄숙한 행복감을 느끼게된다.김찬삼>
(32)흙 냄새 물씬한 「맨발의 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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