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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방화 용의자 정신질환과는 무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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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벌레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온순한 사람이었다."

이웃이 전하는 대구 지하철 방화 용의자 김대한씨에 대한 평가다. 수백명의 사상자를 낳은 참극의 장본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어처구니없는 金씨의 행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신분열병 등 흔히 알고 있는 정신질환의 탓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9일 발표한 성명에서 "金씨는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었을 뿐 정신질환자가 아니다"고 밝혔다. 망상과 환각을 주요 증세로 하는 정신분열병 등 정신질환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金씨가 앓았다는 우울증 역시 정신질환과는 거리가 멀다. 특별한 이유없이 발생하는 이른바 주요 우울증의 경우 정신질환일 수 있지만 金씨의 경우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해 활동이 위축되고 자포자기에 빠진, 누구나 생길 수 있는 우울증일 수 있다는 것.

설령 金씨가 밝혀지지 않은 정신질환을 앓았더라도 이를 범죄의 원인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은기 법제이사는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것은 사회적 편견"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0년 범죄백서에서 일반인의 경우 교통범죄를 제외한 범죄 발생률이 10만명당 2천5백45명으로 2.5%인 반면 정신질환자는 1.8%에 그쳤다는 것.

정신질환자는 치료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일 뿐 경계해야 할 범죄 후보군이 아니라는 얘기다. 망상과 환각에 시달리는 정신분열병 환자도 급성 발작기에 주위에서 자극만 주지 않으면 대부분 온순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金씨의 경우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한 성격변화의 탓으로 보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뇌졸중 탓에 인격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등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뇌졸중뿐 아니라 교통사고나 낙상 등 뇌를 다칠 수 있는 상황이면 언제든 성격 변화가 후유증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

평소 얌전했던 金씨가 돌변한 것도 2001년 뇌졸중이 생긴 이후부터라는 것이 가족들의 말이다. 실제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종성 교수팀이 뇌졸중 환자 1백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2%인 47명이 공격적이며 충동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 법적 판단은 복잡해진다. 정신분열병 등 망상을 동반한 중대한 정신질환이라면 형사적 처벌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金씨처럼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한 성격변화일 경우 전체적인 판단능력은 온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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